1. “원장님, 이제 나오네요.” 오랫동안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에서 법규담당을 해 왔던 아무개의 부재중 전화에 연락했더니 안부 인사도 없이 대뜸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2010년 최병승 사건에서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고 판결한 뒤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원청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이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 소송을 제기해 왔다. 1차 사건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10년도 훨씬 넘었다. 그동안 정규직 전환을 위한 수많은 투쟁이 있었고, 비정규직지회까지 참여한 노사합의도 있었고, 그 합의를 수용해서 많은 원고들이 소를 취하하는 등 소송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지회의 법규담당자는 수많은 일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른 심경을 대법원 판결 선고일을 앞두고 이렇게 한마디로 내게 말한 것이겠다. 27일, 드디어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다. 그러니 만감이 교차해서 그동안 소송과 관련해서 상담하고 협의해 왔던 내게 12년 가까이 돼서 대법원 판결로 드디어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감격스레 말한 것이리라.
2. 그의 말에는 대법원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현대차 근로자로 고용돼야 한다고 판결할 것이라고 확신하고서 하는 말이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지난 10여년 동안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수많은 법원 판결들이 나왔기에 이번에 대법원에서도 그걸 확인시켜 줄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것이 분명하다. 현대차의 생산공정 업무에 종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으로 근로하고 있다고, 이 나라에서 이제는 당연하게 법원에서 판결할 것이라고 믿는 정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사내하청에 대해서 일반적으로는 그렇지가 않다. 며칠 전 한 금속노조 사업장의 불법파견 소송 사건을 협의하던 중 노조간부들이 뉴스 기사를 보여줬다. “SK도 못 피한 하청 직고용 ‘쇼크’… 재계 ‘법이 노동현실 못 따라가’”라는 제목의 10월4일자 조선비즈 기사였다.
3. 구체적으로 기사는 “SKC 계열사인 SK넥실리스도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주로 자동차·철강·조선업 등 제조업에서 발생한 ‘하청 직원 직고용 리스크’가 SK그룹에도 번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SK넥실리스의 경우 하청노동자들의 작업장을 분리했고, 원청 직원들이 해당 공정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재판부는 직고용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분석하고서 “재계는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며, 법조계도 “재판부가 관련 법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하고 있다”고 쓰고 있었다. 조선비즈는 “재판부가 SK넥실리스가 하청 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전산관리시스템(MES)과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을 사용했다는 점을 판결 근거로 들었다”며 “MES는 자재관리, 품질관리, 공정계획에 따른 작업량과 작업순서 편성 등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고, 원청업체가 구축한 시스템을 통해 전 제조 과정이 관리되기 때문에 협력업체도 MES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데, 법원은 원청업체가 이 시스템을 이용해 하도급 업체에 업무를 지시한다고 판단했다”고 썼다. 이어 “MES나 스마트폰 메신저 등 온라인을 통한 업무 소통이 일반화된 시대에 이를 하청 근로자 직고용의 법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법조계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4. 이 뉴스 기사를 건네준 노조간부들은 바로 이 SK넥실리스 사건의 소송을 추진·담당해 왔다. 그러니 더욱 더 뉴스 기사를 심각하게 읽은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이 사건 소송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인 원고 노동자들을 대리하고 있으니,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 노동자들 입장을 지지해서 말해 줄 수 있다고 여긴 것이리라. 당연히 그렇다. 2003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최초로 사내하청노조를 조직해 활동할 때부터 원청 현대차가 사용자로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2005년 소송대리인으로서 현대차 아산공장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원청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한국지엠 등 자동차회사를 넘어서 현대제철 등 철강회사까지도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주장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법정 등에서 나는 주장해 왔다.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다”고 확신에 차서 법적 주장을 해 왔던 자로서 당연히 그렇다. 이렇게 당연히 나는 노동자를 대리해서 주장하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법적 논리로 할 뿐이고, 비법적인 논리로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밝히고 싶다.
자세히 살펴보자. 원청 직원과 구분해서 하청노동자들의 작업장을 분리했다고 해서, 그 작업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작업을 수행하는 데 원청 직원이 함께하지 않는다고 해서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 공간과 세부 작업 내용이 원청노동자의 것과 다를지라도 원청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원청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라면 근로자파견인 것이다(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2조1호). 여기서 원청사업주가 지휘·명령의 방식을 대면해 구두로 하지 않고 MES 등 전산관리시스템을 통해서 하는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지 않다. 원청노동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도 MES 등을 통해서 지시해서 하는 것이니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이라고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MES 등을 통한 원청사업주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지시와 관련해서는 현대제철 순천공장(구 현대하이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집중적으로 주장해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최초로 인정받았고, 그 뒤에 포스코 사건 등에서도 법원이 파견근로의 근거로 인정해서 판결했다. 새삼스럽게 SK그룹사에서 그걸 근거로 인정하는 법원이 판결했다고 해서 “법이 노동현실 못 따라가고 있다”고 비난할 일은 아닌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뉴스 기사는 “MES나 스마트폰 메신저 등 온라인을 통한 업무 소통이 일반화된 시대에 이를 하청근로자 직고용의 법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법조계에서도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작업을 수행하는 데 원청사업주가 MES나 스마트폰 메신저 등 온라인을 통해서 지시하는 것이라면 원청사업주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지휘·명령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억지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니 무슨 말인가. 법조계라니.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이 이 문제를 두고서 논의해서 다수결로 표결해서 법원 판결이 부당하다고 결정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이 나라에서는 툭하면 무슨 법조계고, 노동계인지 알 수가 없다. 조선비즈의 뉴스 기사를 보니, 위와 같이 법조계를 운운하고서 교수의 말을 인용해서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도급 목적상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정보제공 수단인 산업 현장의 MES를 파견법상의 지휘·명령으로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며 “여러 공정의 유기적 결합을 전제로 하는 제조업에 대해 사실상 노무도급을 금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고 하고 있었는데, 이걸 보테서 보면, 법조계란 로스쿨 교수 한 명을 두고서 한 말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라면, 파견소송에서 피고 원청사업주를 대리해 온 로펌 변호사들 정도를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닐까. 아무리 읽어 봐도 “MES나 스마트폰 메신저 등 온라인을 통한 업무 소통이 일반화된 시대”니, “디지털 시대”니 운운하고 있을 뿐이고, 그것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작업 수행케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지 않고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 이런 억지 주장을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고 있으니 나는 그렇게밖에 이해하지 못하겠다.
5. 이 나라에서 불법파견은 파견법을 위반한 불법, 범죄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현대차 등 원청사업주는 불법과 범죄를 저질러 온 불법행위자, 범죄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는 도대체가 불법파견이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는 나라라면, 노동자를 위한 법도 공정하게 집행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도대체가 파견법이 제정돼 시행된 것이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불법파견 투성이고, 엄정한 파견법 집행을 통해서 불법파견이 근절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사내하청이 원청사업주의 사업을 위한 노동자 제공을 위해서 기능하고, 그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원청사업주가 MES 등 갖가지 방식을 통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음이 명백한데도 여전히 이 나라는 “법이 노동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원청사업주의 사업을 위해서 파견법을 개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파업 등 노동자의 쟁의에 대해서는 광범위하게 규제해서 어지간해서는 불법이고 범죄인데, 그 법은 엄격히 집행돼 왔다. 툭하면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는 국가권력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법 집행에 있어서는 도대체가 공정과 정의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불법파견의 나라는 공정과 정의의 나라가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