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공룡 플랫폼 카카오는 독과점으로 떼돈을 벌어도 안전엔 소홀했다. 화재 사흘이 지나도 완전복구가 안 되자 거의 모든 언론이 카카오를 맹비난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8일자 1면 ‘카카오 독과점, 수면 위로’, 3면 ‘공공재 기능에도 무규제’ 기사에서 정부의 플랫폼 정책 변화를 주문했다. 한겨레는 ‘자율 뒤 숨은 플랫폼 사회적 책임 묻는다’는 1면 머리기사에서 자율 규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날 ‘실시간 백업도 안 했다’(3면 머리기사)며 카카오를 비난했다.

보수 언론도 카카오 때리기에 동참했다. 조선일보는 카카오가 지난해 4월 골목상권과 충돌하는 40여 개 계열사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계열사 겨우 10개 줄였다’(1면 머리기사)며 ‘카카오의 배신’이란 문패까지 달았다. 조선일보는 카카오가 “화재엔 ‘예상 못했다’, 안전엔 ‘최저 비용’, 책임엔 ‘네 탓이야’”(2면 머리기사)라는 식으로 발뺌한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MB 정부 때부터 플랫폼 독과점 문제가 제기됐으나 매번 ‘자율 규제’ 카드를 내밀며 피해 갔다(3면 머리기사)고 짚었다.

동아일보는 재난 대응 매뉴얼 자체가 대외비라는 카카오와 판이한 MS와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재난 대비책을 소개했다.(2면 머리기사, ‘MS, 서울-부산에 쌍둥이 데이터센터 … 구글, 재해대응 분단위 공개’) 동아일보는 3면에선 카카오가 사실상 국가 기간통신망이라서 독과점 심사는 물론이고 불공정 제재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5면에 ‘10년 전 판교 회사 마인드론 안 돼, 서버·보안체계 새로 짜야’라는 제목으로 너무도 안이한 백업 시스템을 가진 카카오에 재난 매뉴얼 재정비와 복구 지원센터 상시 운영을 주문했다.

이 지경에도 매일경제신문은 ‘카카오 데이터센터 재난시설 편입하더라도 경영 간섭은 안 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민간 데이터센터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거나 경영 간섭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과도한 자료 제출 요구로 기술 보안이나 영업기밀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서비스 먹통으로 분노한 이용자들의 심리에 편승해 규제 강화에 매몰되기보다는 시장경제와 산업경쟁력을 함께 고려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플랫폼기업, 더 정확히는 플랫폼기업 오너 한 사람을 대변하는 대단한 용기다. 사흘 동안 138개 카카오 계열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천만 시민이 불편을 겪고, 수백만 자영업자와 특수고용 노동자가 수입이 반 토막 났는데도 이런 사설을 쓰는 건 단연 용기다.

이날 가장 빛났던 언론사는 한국일보였다. 한국일보는 이날 4면 머리에 쓴 ‘2년 전 국회 반대만 없었어도 카카오 대란 막을 수 있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야가 카카오 먹통 때문에 민간 데이터센터를 국가 재난관리시설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해당 법안은 2020년 여야 의원들의 반대로 국회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018년 KT 아현동 화재를 계기로 박선숙 민생당 의원이 2020년 3월 재난에 따른 데이터 소실·유출을 막으려고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안은 두 달 뒤 5월20일 국회 법사위에서 거대 여야 의원들 반대에 부딪혀 50분 만에 처리가 무산됐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산업발전에 저해되는 과잉 규제요소가 있다”며 반대했고, 정점식 국민희힘 의원은 “정보통신망법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가세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도 “뭐가 급해서 땡처리냐”며 반대했다. 법사위원 가운데 채이배 민생당 의원만 유일하게 찬성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데이터센터가 포함돼 재난에 대비하는 굉장히 중요한 법안이라고 강조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번 카카오 사태로 두 거대 정당 원내대표가 법 개정을 목놓아 외쳤지만 2년 전엔 왜 반대했을까. 2년 전 법안 무산 때 침묵으로 동조했던 언론은 아무 책임이 없는 건가.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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