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파업은 안 좋은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파업’은 헌법에 있는 기본권이다. 헌법 33조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단체행동, 즉 파업할 권리가 이미 헌법에 명시돼 있는 것이다. ‘파업’이 노동자의 기본권인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가 기업의 이윤 중심으로 구성·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과 불평등,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기에 노동자들에게 ‘파업’이라는 집단적 힘을 부여해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
파업이 해당 노동자들의 이익만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몇 가지 파업을 떠올려 봐도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다음달 말 파업을 예고한 철도노조는 민영화를 막기 위해 파업을 한다. 차량 정비를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 결국 민영화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의 파업은 철도의 안전과 공공성을 위한 파업이니 시민들을 위한 파업이기도 하다. 올해 6월에 진행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도, 위기를 하청노동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원청에 맞선 파업이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등 지속적 위기의 시대, 일방적으로 약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지 않도록 저항하는 투쟁이었다.
현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판례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목적으로 할 때만 합법적인 파업이라고 한다.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법 개정 파업, 시민의 권리를 위한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파업, 정리해고를 막는 파업, 원청의 책임을 묻는 파업 등을 모두 불법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위에서 이야기한 철도의 파업,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모두 불법이 된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기적인 불법행위라고 비난하지만, ‘불법’으로 규정된 파업은 전체 노동자와 시민들의 권리를 위한 파업이었다.
한국의 노조법은 헌법에 명시된 노동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파업’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파업을 꼼꼼하게 제한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합법적인 파업을 하려면 쟁의행위의 주체·목적·절차·방법을 규정한 노조법을 따라야 한다. 오로지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고용계약을 맺은 자와만 교섭을 요구해야 한다. 교섭도 수차례 하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고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합법파업을 하더라도, 파업 도중 사측과 부딪쳐 하나라도 위법한 사항이 발견되면 그 파업 전체가 불법파업이 된다. 이러니 한국에서 합법적인 파업을 하기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어느 정도 안정된 노조들이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파업에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고 파업도 길게 가지 않는다. 길어지는 경우는 사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서 정리해고에 맞서거나 민영화를 막아야 하거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이 다수다. 그리고 이 파업은 대부분 불법으로 규정돼 노조나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이 청구된다. 그래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는 ‘이대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불안정 노동자들이 자기 삶의 주체로 살 수 없고, 기업의 일방적인 권리 훼손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란봉투법이 꼭 필요하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의 목적을 협소하게 규정한 현재의 노조법 2조5호를 바꿔서 노동자들이 여러 의제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와 사용자 정의인 노조법 2조1호와 2호를 바꿔서 권한은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진짜 사장들에게 책임을 묻고, 일하는 모든 이들이 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게 만들고 있는 노조법 3조를 바꿔서 노동자들이 손해배상에 위축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자는 법이다. 그래서 노란봉투법은 파업을 잘하게 하자는 법이다.
기업의 이윤과 재산권이 우리 사회의 최고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가치들이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시민의 삶을 파괴하는 민영화로 이어지며, 환경을 파괴해 기후위기를 만들어 내고, 경쟁과 위계로 불평등을 확대하는 관계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노란봉투법에서 시작하자. 지금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이후 기업의 이윤에 맞서, 기후위기에 맞서, 차별에 맞서, 더 많은 소수자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투쟁으로 이어 나가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