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지막까지 미뤘다. 지난달 29일에 선고된 판결문을 최대한 늦게 송달받기 위해서였다. 일부 승소라는 결과만 법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채 구체적인 판결의 결과와 내용을 알지 못하고서 자동송달 처리되는 날이 돼서 판결문을 송달받았다. 지난주 금요일(7일)이었다. 이날 오전 노조로부터 판결을 묻는 연락이 왔는데, 그제서야 나는 판결문을 읽어 보고서 대답해 줄 수가 있었다.
2019년 7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 뒤 노사합의를 하고 이를 수용한 많은 원고들이 소를 취하했다. 사측이 원고들에 대한 급여 자료 제출을 미뤄서 원고들의 청구금액을 산정해 청구취지 변경신청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사건이었다. 겨우 지난 5월에야 제대로 청구금액을 산정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재판부는 바로 변론절차를 종결하고 선고일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주장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준비서면으로 제출하겠으니 한 기일만 더 속행해 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재판장은 그동안 재판 지연에 대한 책임이 원고측에 있기라도 한 듯이 원고들 소송대리인인 나의 요청을 받아주지 않고서 변론절차를 마무리해 버렸다. 소장과 청구취지 변경신청서를 통해서 피고 회사의 지급기준을 제시하면서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해 놓았으니, 법리적 판단 사항에 관해서는 변론종결 뒤 판결 선고 전에 참고서면을 통해서 밝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재판장의 태도에 나는 결과가 걱정됐다. 더구나 이 사건은 단순히 상여금 등의 통상임금 해당성을 다투는 것이 아니었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 3년을 도과한 청구까지 포함하고 있었고, 그 금액이 더 컸다.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항소 기한이 기산되기에 될 수 있는 한 마지막까지 송달을 미뤘던 것이다. 많은 원고들이 집단적으로 진행하는 사건에서는 14일 이내에 항소 여부를 파악해서 항소장 제출 등 절차를 처리하기가 만만치 않다. 노동조합이 소송을 추진한 것이지만, 항소 여부는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의 의사를 확인해야만 하는데, 대규모 집단소송에서는 그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 말고도 앞에서 말한 3년의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도과한 청구 부분에 대한 판단 등 판결 결과에 대한 걱정도 보태져서 지난주 금요일에야 판결문을 송달받아서 읽게 됐다.
2. “사실상 우리가 완승인데요.” 판결문을 읽어 보고서 놀랐다. ‘일부 승소’라고 법원 홈페이지에 판결 결과가 게시됐던 터라 ‘소멸시효 도과한 청구 부분 등에 관해서 인정하지 않은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업적수당 등 몇몇 수당에 관해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청구한 것을 인정하는 판결문이었던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인정하지 않고, 주휴수당은 통상임금 기준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근로시간으로 간주하는 시간에 관해 휴게시간이라는 주장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원고들의 주된 청구와 주장을 모두 인정해서 판결하고 있었다. 그래서 판결 결과를 묻는 노조 부위원장에게 ‘일부 승소’라고 한 법원 홈페이지의 판결 결과 게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실상 완승했다고 대답할 수가 있었다.
2014년 현대트랜시스(당시 ‘현대파워텍’)에서 노동자측은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주고 미지급 임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해서 ‘통상임금 관련 그룹사 합의 결과를 준용’하기로 노사합의했다. 이러한 합의는 그 뒤 단체교섭 등을 통해서 재확인해왔다. 그리고 2019년 3월께 그룹사인 기아자동차 등에서 노사합의가 나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사측에 노사합의 이행을 재촉했으나 사측이 들어 주지 않자 노조가 집단적으로 소송을 추진하여 그해 7월 소장을 제출했던 것이다. 문제는 2019년 7월 당시 이미 임금채권의 소멸시효 3년을 도과한 기간의 임금청구였다. 피고는 예상대로 소멸시효 항변을 주장하고 나왔다. 이와 관련해 기아차와 현대차 등 노사합의 뒤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들에서 법원이 사측의 소멸시효 항변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들에서는 노사합의로 대표소송의 대법원 확정판결 결과를 동일하게 적용해 주기로 정하고, 이에 따라 그걸 믿고서 기다렸던 것인데 노동조합과의 노사합의를 통해서 그 대표소송을 취하하도록 했다. 그래서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을 주장한 것이니 사측은 원고들의 신뢰를 저버린 것으로, 사측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판결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통상임금 관련 그룹사 합의 결과를 준용’하기로 노사합의해서 그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법원의 소멸시효 항변을 취급할 것인가.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어떻게 나올 것인지 걱정이었다. 막상 판결이 나오게 되면 당연한 것이라고 판결을 읽게 되는데도 언제나 그렇다. 어쨌든 걱정한 나는 참고서면을 통해서 피고가 노사합의를 통해서 ‘통상임금 관련 그룹사 합의 결과’를 준용해 주기로 해서 원고들은 이를 믿고서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지 않고서 그룹사 합의 결과가 나오기만 기다렸던 것이고, 이렇게 믿고 기다리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 3년을 도과하게 됐던 것인데, 이러한 상태에서 채무자인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서 피고 소멸시효 항변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판결문을 읽어 보니, 2014년 노사합의 등에 따라 “그룹사의 통상임금 사건 판결이 확정되거나 통상임금 관련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별도의 소제기가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지속됐던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신뢰는 피고의 위와 같은 적극적인 행위에서 야기된 것으로 평가”된다며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너무도 당연한 법리를 설시하면서 피고 항변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었다.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추가 시간외근로수당 등을 청구하자, 피고는 시간외근로시간에서 휴게시간 등을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즉, 1일 8시간 근로 중 휴게시간으로 오전 10분, 오후 10분 등을 보장하면서, 이러한 휴게시간은 근로한 것으로 간주해 왔는데, 피고는 이 휴게시간은 법상 휴게시간이라며 근로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식의 사측 주장은 기아차 등 통상임금을 다투는 여러 사업장들에서도 해 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참고서면을 통해서 나는, 당사자가 합의한 근로시간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를 인용하면서, 피고 주장 대로면 화장실 이용 등까지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게 되는 등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피고 주장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해야 했다. 판결문을 읽어 보니, 합의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를 인용하고서 대기시간 내지 준비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되고 10분·15분의 휴게시간은 기본적인 생리현상 해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등으로 설시하면서 근로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피고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있었다.
그 밖에 피고가 기본급 기준으로 주휴수당을 지급한 데 대해 원고들은 통상임금 기준으로 추가 주휴수당을 청구했는데, 이에 대해 상여금 등 각종 수당에는 주휴수당분이 포함돼 있다며 원고들이 중복청구한 것이라는 피고가 주장했다. 여기서 주휴수당은 휴일근로수당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1주일에 1일 이상 줘야 하는 유급 주휴일을 말하는 것이다. 휴일로 쉬는 일요일, 그리고 주 5일제 사업장에서 보장하는 유급 토요일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사업장들에서 기본급 기준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통상임금 소송을 상담하면서 확인해 보니 현대트렌시스에서도 그러해서 청구하게 됐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참고서면을 통해서 관련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서 통상임금 기준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고, 판결문을 읽어 보니 당연하게 통상임금 기준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있었다.
3. 참으로 걱정이 많았던 사건이었다. 당연하게 판결해야 하는데, 당연하지 않은 판결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사건이었다. 판결문을 읽고서 나는 법리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판결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회사는 뒤집을 수 있다고 하네요.” 판결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해 줬더니 노조 부위원장이 이번 판결에 대해서 사측 담당자가 했다는 말을 전했다. 항소하면 고등법원에서 사측은 이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럴 리가. 당연하지 않은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사측은 기대하는 것일 텐데, 그래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권리를 확인하는 당연한 판결이 선고돼야 한다. 더는 당연하지 않은 법원 판결에 대한 걱정은 없어야 하는 것이겠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