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을 또 교육부 장관에 지명하자 한겨레는 지난달 30일 5면에 “‘공교육 실패는 진보 탓’ … 내 탓은 모르는 MB교육 설계자”라고 혹평했다.
보수언론도 이주호 장관 컴백을 반기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같은날 5면에 “이주호, 10년 만에 교육장관 컴백 … 야 ‘교육 양극화 장본인’”이란 제목으로, 한국일보는 4면에 ‘교육부 장관 이주호, 경사노위 위원장 김문수 … 올드보이 선택한 윤 대통령’이란 제목으로 각각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공교육 후퇴 이주호, 10년 만에 또 교육부 장관’이란 사설에서 “교육의 형평성이 흔들리고 무한경쟁에 내몰릴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높다”고 우려했다. 한국일보 사설은 “코로나19 여파로 벌어진 학력 격차 해소”가 시급한데 이주호가 과연 그런 인물인지 의심했다.
한국일보 사설은 이주호 개인 비판에 그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함께 일하겠다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렇게 없는지 성찰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일보의 지적을 대통령이 알아듣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대부분 언론이 이 후보자를 걱정하는데도 조선일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후보자를 편들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일 12면에 이 후보자와 인터뷰해 “교육 격차 줄이고 대학에 자율 주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격차 해소’와 ‘대학에 자율권을 더 많이 주겠다’는 말은 어떤 연관성도 없다. 대학에 자율성을 더 많이 주면 교육 격차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두 문장은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에 더 과감하게 자유를 부여하면 경쟁과 줄 세우기 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확대된 교육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진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아무 생각 없기는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연금개혁과 노동개혁 같은 개혁을 들먹이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구체성을 띤 내용은 없다. 그사이 보수 언론은 ‘몇 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가짜뉴스를 버젓이 보도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이를 본 대통령은 더 분발해 연금개혁을 말하지만, 보험료 왕창 올리거나 미래에 받을 급여를 대폭 깎자는 정형화된 이분법조차 꺼내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연금의 공적 성격 강화 같은 근본 해결책은 달나라 이야기가 되고 있다.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개혁도 마찬가지다. 반복해서 노동개혁을 말하지만 뭘 어떻게 할지는 없다. 지난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했을 때 대통령이 보인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대통령은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내가 모르는 내용이 발표됐다.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정파에 따라 사안을 비틀고 뒤집는 언론까지 가세해 개혁 과제는 여지없이 산으로 가고 있다. 동일한 노동 사안을 놓고도 양극단으로 엇갈리는 시선을 보여주는 게 한국 언론이다. 지난달 28일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이주노동자’ 기사가 대표적이다. 경향신문은 ‘이주노동자’이라 불렀지만 조선일보는 ‘외국인 근로자’라고 불렀다.
경향신문은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가 숨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씨 사망 2년을 돌아보며 이날 1면에 ‘캄보디아 노동자 594편의 절망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594건의 이주노동자 상담 기록을 담았다. 경향신문은 8면엔 ‘화장실도 없는 비닐하우스 살며 농장주에 매달 25만원 떼이는 일그러진 코리안드림’을 고발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같은날 1면에 ‘외국인 일손 이탈 막아라, 농촌마다 안간힘’이란 제목으로 한국 농촌에 들어온 계절노동자가 자주 잠적해 농장주들이 고통받는다고 썼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