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간접고용·특수고용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헌법상 노동 3권을 보장하라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요구에 대한 반대 논리가 점점 더 해괴해지고 있다. 지난 22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조법 2조·3조 개정 요구에 대해 “핵심은 특정 사람들과 단체에 있어서는 민사상 불법행위를 해도 책임을 면제해 준다는 것”이라며 “헌법상 평등권 문제”가 있어 반대한다고 답변했다.

수년간의 임금삭감에 책임 있는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투쟁을 계기로 시민·사회단체가 결집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의 요구는, 모든 노동자가 노동 3권을 차별 없이 누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면서도 중간업체를 끼워 넣어 모든 노동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진짜 사장’을 상대로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 딱지를 붙여 노동자와 그 가족까지 파괴하는 탄압을 멈추라는 것이다.

경총 등은 외국에는 ‘불법’파업에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법이 없다고 우긴다. 기가 막히는 거짓 주장이지만 먼저 반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하는 것을 ‘불법’이라 하는 나라는 또 어디 있는가? 산별교섭을 주로 하는 유럽대륙 국가들에서는 원청을 상대로 하는 교섭은 문제 자체가 안 된다. 오히려 단순한 원·하청 관계를 넘어 국경마저 뛰어넘는 공급사슬의 정점에 있는 지배기업에게 사슬 말단의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책임을 지우는 입법도 늘고 있다.

우리와 교섭체계가 비슷한 미국에서도 원청을 상대로 하는 단체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법제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일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공동사용자 지위에 관한 기준’ 시행령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미국은 이미 1940년대부터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고용주와 공동으로 지배하는 원청을 ‘공동사용자(joint employer)’로 보는 법을 적용해 왔다. 2015년 NLRB는 과거에 공동사용자를 인정하는 기준이 너무 협소해, 사용기업이 노동자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사용자 책임은 회피하도록 도왔다고 반성했다. 그러면서 공동사용자 인정기준을 확대했다. 즉, 사용기업이 하청·용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거나 하청업체와의 계약서, 하청노동자가 따라야 할 업무 지침 등을 통해 지배권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도 사용기업을 공동사용자로 보고 단체교섭에 나서게 만들었다.

이처럼 NLRB가 브라우닝 페리스 사건을 통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확대한 후, 트럼프 행정부 치하에서 이를 폐기하고 공동사용자 인정기준을 도로 협소하게 만드는 시행령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번에 NLRB가 행정예고한 시행령은 트럼프 치하의 시행령을 폐기하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복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계약서·업무지침 등을 통해 노동조건에 대한 지배권을 보유하는 경우에도 공동사용자로 인정하고, 중간업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청노동자를 통제하는 경우에도 원청기업을 공동사용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NLRB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실질화해야 하는 이유를 실질적 평등에서 찾고 있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너무 좁게 인정하면, 간접고용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관계된 사업주가 둘 이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박탈당하게 되는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NLRB는 간접고용을 활용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려는 탈법기업을 제어하지 않으면, 노동법을 준수하며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준법기업이 노동법을 회피하는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불공정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도 경고하고 있다.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이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 진짜 사장을 상대로 단체교섭하고 파업하는 것에 무조건 ‘불법’ 딱지를 붙이는 법 적용을 고수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 말마따나 ‘특정 사람들과 단체에 있어서는 불법행위를 해도 책임을 면제해 준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책임을 부당하게 면제받는 ‘특정 사람들과 단체’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헌법상 노동 3권 보장 책임을 회피하고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와 노조를 파괴하는 불법행위를 일삼는 원청과 재벌들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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