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던 이진오는 금속노조 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해고당한다. 덩달아 이진오의 동료들도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한다. 노동자 해고를 서슴지 않던 경영진은 회사를 다른 기업에 매각한다. 마침내 이진오는 해고 노동자를 대표해 45미터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간다. 이진오와 노동자들의 주장은 아주 명확하다. ‘복직과 고용승계’.
굴뚝에 오른 지 한 달이 되고, 100일이 지났는데도 회사는 아무 반응이 없다. 힘이 들지만 이진오는 묵묵히 이겨 낸다. 사실 이진오에게는 삼대째 금속노동자의 피가 흐른다. 1대 증조부 이백만은 일제 강점기에 철도 정비소에서 일한 노동자였다. 2대, 조부 이일철은 일제 강점기 철도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인으로 되기 어렵다는 철도 기관사였다. 3대, 부친 이지산은 해방 후 철도 기관사 교육을 받고 철도청에서 철도 기관사로 일했다. 이를테면 이진오는 ‘이백만→이일철→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삼대째 노동자 족보를 가진 셈이다.
굴뚝에 오른 이진오는 1년 넘는 투쟁과 시민들의 관심 덕분에 사용자가 교섭에 나섰고 노사는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에 합의한다. 이진오는 공장 굴뚝을 내려와 오랜만에 땅을 밟고 감격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노사 합의와 다르게 사측은 먼지가 쌓이고 이미 폐쇄된 공장으로 이들을 복직시켰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사측은 곧 다른 곳으로 발령 낸다고 약속하지만 이미 노사 간 신뢰는 깨진 상황이다. 언제 복직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진오의 동료는 말을 한다. 이번에는 자기가 굴뚝에 오르겠다고.
이 이야기는 2020년에 출간한 소설가 황석영 선생의 <철도원 삼대> 내용이다. 황석영 선생은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소설이 드물어서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얘기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해방 후에는 경제와 산업발전이란 미명 아래 국가와 사용자들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일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 예컨대 분신, 높은 굴뚝 농성, 아사 직전의 단식 등을 시도했다. 그래야 겨우 언론과 정부의 관심을 조금 끌었다.
쌍용차·대우조선해양·하이트진로·CJ대한통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파업을 이유로 노조 및 노동자에게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한 업체들이다. 2009년 쌍용차 노조는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70일 넘게 파업했고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는 저임금을 해결하고자 50여일을 농성했다. 하이트진로 화물자동차 노동자들은 운임비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고 CJ대한통운 택배노조는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본사를 점거했다. 쌍용차는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현재 원금과 이자가 30억원에 이른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은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를 상대로 470억원, 하이트진로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에게 55억원, CJ대한통운은 전국택배노조 조합원에게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한 노동자는 평생 일해도 만져 보지 못할 돈을 물어내야 할 판이다. 몇만 원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단돈 1만원이 아쉬워 파업하는 노동자에게 억단위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삶까지 무너뜨리는 가혹한 폭력과 같다. 손해배상이란 보이지 않는 칼은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쓰러뜨리고 정신적 고통을 안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쌍용차 조합원의 상당수가 파업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불안감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함부로 손해배상 무기를 휘두르지 못하게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손배소와 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보장돼 있다. 노동자들이 연대해 노조를 만들고 부당한 대우에 서로 힘을 합쳐 파업을 할 수 있는 것이 노동3권의 원래 취지다. 하지만 실제 노동3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쟁의의 핵심은 노조가 파업해 사용자들에게 손해를 끼쳐 자신들의 요구를 얻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법은 쟁의권 행사 조건이 까다로워 노조가 합법적으로 파업하기 어렵다. 노조법 2조에서 밝히고 있는 ‘노동쟁의’는 노사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등 근로조건의 결정과 관련돼야 한다. 또한 37조의 쟁의행위는 노조의 파업목적·방법 및 절차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고 사용자의 조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에서 쟁의권은 제한적이고 모호하며 사용자 중심으로 명시돼 있다. 노조법이 노조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사용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 향상 대신 구조조정 반대, 고용승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파업은 불법이며 이 과정에서 파업목적·방법·절차 중 하나라도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불법 딱지가 붙는다. 그 순간 사용자는 노조에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여기에 더해 보수언론들은 귀족노조 파업, 시민불편을 주는 파업, 불법적인 파업, 경제성장을 막는 파업으로 떠들며 노조를 사회적 악으로 매도한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무늬만 노동3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일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진오’가 너무 많다. 설령 파업을 통해 어렵게 노사가 합의했어도 사측은 식은 죽 먹기로 쉽게 파기한다. 예를 들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는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합의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다시 단식투쟁으로 맞서자 10월 말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여전히 잘 지켜질지 의문이다. 소설처럼 굴뚝에서 내려온 ‘이진오’를 다시 올라가게 하는 일은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일제 강점기부터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뎌 온 ‘철도원 삼대’처럼 오늘날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그리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도 불법이 되고 사용자에게 무차별적인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다. 대우조선해양 유최안 노동자가 말한 것처럼 노동자들은 더 이상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은가? 이런 노동환경을 우리 자녀들에게 이대로 물려줄 순 없지 않은가? 우리 세대에 끝내야 할 과제이며 책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