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2위 규모 동방항공의 14기 한국승무원 단체사진. 14기 승무원들은 코로나19 발발 직후인 2020년 3월11일 집단해고됐다. <중국동방항공 14기 승무원 제공>

“동방항공은 한국 국적 승무원을 제외한 다른 외국 국적 승무원에 대해서는 전혀 구조조정을 시도하지 않았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외국 국적 승무원 중 14기 한국 국적 승무원에 대해서만 고용관계를 종료시켰다는 점은 명백한 차별적 대우에 해당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봉기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중국 3대 국영항공사인 동방항공이 한국 승무원 70명을 해고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질타했다. 이내 방청석을 메운 동방항공 14기 승무원 20여명은 울음을 터뜨렸다. 2년6개월의 장기간 법정 다툼 끝에 나온 1심 결론이다.

이날 재판부는 A씨를 포함한 승무원 70명이 동방항공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애초 지난 5월 선고가 예정돼 있었으나 재판부가 조정에 넘겼다. 하지만 동방항공측이 이의신청을 하면서 선고가 내려지게 됐다.

동방항공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국적의 승무원 중 특정 기수만 ‘콕’ 집어 해고해 논란이 일었다. 2018년 3월 2년 기간제로 입사한 14기 승무원 73명은 2년여 만인 2020년 3월9일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계약만료일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사측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산업 전반의 경기가 침체해 재정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점을 해고 사유로 들었다.

하지만 14기를 제외한 선배 한국인 승무원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된 상태였다. 해고자 중 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2020년 4월 해고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계약갱신 준비 정황 곳곳에, 법원 “갱신기대권 인정”

쟁점은 근로계약 ‘갱신기대권’ 인정 여부와 갱신 거절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였다. 계약갱신 거절이 ‘갑자기’ 이뤄진 정황은 여러 군데서 나왔다. 2011~2019년 기간제로 근무한 한국 국적 승무원 대부분(285명 중 272명)은 계약을 갱신했다.

사측은 14기 승무원들에게도 2019년 5월 별다른 기간을 두지 않고 ‘퇴직일’을 계약기간으로 하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또 이듬해 1월에는 중국에 180일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체류 허가서인 ‘거류증’ 유효기간 연장을 신청하라는 내용의 공지도 했다.

게다가 14기 승무원 일부는 계약기간 만료 두 달 전인 2020년 1월까지 비행훈련을 거쳐 비행자격을 얻었다. 코로나 확산 이후 복직 조건을 걸고 휴직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휴직동의서’도 제출했다. 이어 내규 위반으로 비행이 정지됐던 승무원 2명에게는 갱신 거절 한 달여 전인 2020년 2월 업무 복귀준비를 지시했다. 사실상 계약연장을 전제로 이뤄진 조치인 셈이다.

이를 토대로 법원은 14기 승무원들의 ‘갱신기대권’을 전부 인정했다. 재정 상황 악화를 규정한 근로계약 조항이 있더라도 곧바로 갱신기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승무원 업무는 전문성을 지닌 인력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연속성을 가지고 이뤄질 필요성이 있는 업무”라고 판단했다.

“경력 짧은 승무원만 해고, 합리적 절차 없어”

갱신 거절에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고 봤다. 재계약을 거절한 2020년 3월께 동방항공의 재정 상황이 악화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3월의 승객수는 225만명으로 전월(129만명)보다 훨씬 많았다.

재판부는 아무런 고용유지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재계약 체결을 거절한 부분을 질타했다. 14기 승무원들을 운항 비중이 큰 중국 국내선에 투입할 수 있는데도 이 같은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2020년 3월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계속 받으면서 경영상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도 원고들 전원에게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한 조치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계약갱신 거절 대상자를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하기 위한 절차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동방항공은 경력이 길수록 능숙하게 기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경력이 가장 짧은 원고들과 근로계약을 종료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며 “이는 결국 재직기간 외에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합리적인 기준이나 절차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업무고과가 우수한 승무원이 있는데도 ‘14기 한국 국적 승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약갱신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 기준 다른 외국 국적 승무원들의 숫자는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해 거의 비슷한 수준인 사실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갱신 거절 다음날부터 승무원들이 재판을 청구한 날인 지난해 5월31일까지의 기본급과 비행수당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를 이유로 해고된 중국 동방항공 한국인 승무원들과 이들을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가 지난 8일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를 이유로 해고된 중국 동방항공 한국인 승무원들과 이들을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가 지난 8일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승무원들 “이해할 수 없는 해고였다”

14기 승무원들은 일제히 환영했다. 이들은 법원이 판결을 보류하고 70명 중 20명을 재고용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리자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그간의 정신적·경제적 고통도 상당했다고 털어놨다. 갑자기 일터를 잃은 승무원들은 우울증·불면증·대인기피증 등을 겪었다. C(32)씨는 “가장 슬펐던 것은 주변 또래들은 승진도 하면서 잘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멈췄다는 느낌이었다”며 “선배 기수들보다 외국어 영역이 특출했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왜 내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동방항공 책임자의 발언은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다. B씨는 “입사 당시 최고책임자가 우리에게 좋은 노선을 많이 비행할 것이라며 ‘행운아’라고 했다”며 “그런데 계약갱신을 거절하면서는 ‘젊으니까 선택권이 많다’고 했다. 지금 상황을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승무원들을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원고들은 해고된 후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구직과 생업과 소송을 병행하면서도 소송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원고들의 평균 나이는 28세를 넘어섰다. 동방항공은 1심 판결대로 원고들을 정규직 근로자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갱신 기대권에 관한 또 하나의 선례를 세운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중대한 경영위기가 발생했더라도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려면 객관성·공공성·합리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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