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과 길들이기가 시작됐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뜬금없이 근로자수 100명 이상 기업 단체협약 1천57개를 전수조사했다. 노동부는 단협에 채용 관련 법 위반사항을 파악해 적절히 고치도록 지도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사가 자율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지만 체결된 단협이 법에 위반된다면 시정을 명령할 수 있고, 미시정시 벌금 500만원 이하를 부과할 수 있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노동부는 조사 결과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산재사망자의 직계가족 채용 조항 58건과 노조 또는 직원의 추천자 채용 조항 5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우선채용이나 특별채용 협약 조항이 헌법 11조 ‘평등권’과 고용정책기본법 7조 ‘취업기회의 균등한 보장’, 민법 103조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등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직자 또는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며 청년들의 공정한 채용 기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좌절시키는 것”이라며 노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는 이미 2016년 박근혜 정부 때도 나왔던 것으로 새로울 게 없다. 노동부가 공정한 채용을 가로막은 것이라며 비판했던 협약 조항들도 실제 기업 채용에 작동하지 않은 사문화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기아자동차 노사 단협 23조1항 ‘회사는 신규 채용시 사내 비정규직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 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의 자녀에 대해 채용 규정상 적합한 경우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이다. 회사 발전에 기여한 노동자의 자녀가 채용 원서를 냈을 때 충분히 능력이 된다면 우선 채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회사측 관계자는 이 조항을 통해 채용하는 경우는 없고 현재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사문화 조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능력이 있는데도 해당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 자녀라는 이유로 채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공정하지 않을까? 2020년 8월 대법원에서 적법하다는 판결을 받은 산재 유족 특별 채용 조항만 남기고 노사는 나머지 채용 관련 조항을 삭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드는 것은 2016년에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왜 또다시 단협을 전수조사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의 신호탄이다. 노조의 불공정 채용을 강조하면서 노조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고 반노조 정서를 확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2020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인국공 사태’가 떠오른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취업준비생을 울리는 불공정 채용이며 현대판 음서제(고려·조선시대 때 상류층 자손은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채용하는 제도)라고 보수 언론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힘을 합쳐 노조와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미래통합당과 언론사가 감독하고 청년 취준생이 주연한 이 영화는 크게 흥행했다. 그래서 인국공 사태는 채용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회자 되는 단골 메뉴다.
보통 청년들이 회사에 입사해서 임원이 되기까지 20년 이상이 걸린다. 이것을 흔히 별을 달았다고 한다. 별을 다는 인원도 낙타가 바늘구멍에 통과하는 것만큼 매우 적다. 우리가 말하는 대기업일수록 평사원에서 임원이 되는 기간은 늘어나고 구멍은 좁아진다. 그런데 기업 근무 경력이 전혀 없어도 입사와 동시에 임원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취준생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불공정 채용이 아닐까. 노동부는 이런 것을 위법한 채용이자 특혜 승진으로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불공정 채용이 대기업 오너 자녀라면 달라진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정몽진 KCC 회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대기업 오너 자녀로서 입사와 동시에 별을 단 사람들이다. 또한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5세에 임원이 되었고,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 사장은 24세에 조선호텔 상무보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은 29세에 기아자동차 이사가 되었다. 회사에 입사해 20년 넘게 일해도 되기 어렵다는 임원을 대기업 오너 자녀는 입사와 동시에 혹은 대학을 갓 졸업할 나이인 20대에 오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너 일가의 첫 취업 나이는 평균 29세다. 임원까지 승진하는데 걸린 시간은 5년도 채 되지 않으며, 임원승진 나이는 33.8세이다. 그런데 대기업 오너 가족들이 가진 해당 기업 주식은 평균 3.5%에 불과하다. 결국 4%도 안 되는 주식을 가진 대기업 오너들은 자기 마음대로 자녀 채용과 승진을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취준생은 분노하지 않고 노동부는 조사할 마음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 취준생들과 정부는 대기업에 관대하고 보기 딱할 정도로 너무 착하다.
가장이 일하다가 산재를 당해 죽거나 다쳤을 때 남겨진 가족들의 생계는 막막하다. 노동자를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든 기업이 남겨진 가족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게 당연하다. 만약 그런 가족을 외면한다면 비윤리적인 기업으로 비난받아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공짜가 아니라 산재를 당한 노동자 가족 중 1명이 채용절차를 거쳐 일하는데 그것을 특별채용이라고 하는 게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대기업 오너 자녀라는 이유로 취업과 승진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게 오히려 특혜이고 헌법의 평등권 위반이다.
윤석열 정부의 공정한 채용 정책은 대기업 오너 자녀들에게는 먼저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질서 확립의 기본이 될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