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이 막 지났다. 윤석열 정부는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국민께 드리는 약속’ 중 하나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는 문장을 내걸며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 ‘노사 협력을 통한 상생의 노동시장 구축’을 제시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후 6월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안, 그리고 최근 국무조정실이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진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에 따르면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는커녕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하려는 것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선 근로시간과 관련해 정부는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단위 확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 유연근로제 활성화를 추진하고,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운영 애로사항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근로제도가 시행되기가 무섭게 지난해 1월5일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3~6개월을 단위기간으로 하는 제도 신설), 선택적 근로시간제(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업무 정산기간 3개월로 연장)가 확대돼 노동자의 휴게권 보호라는 근로시간 규제 취지가 무색해졌는데, 이번 정부는 이것으로도 모자라 근로시간 규제를 아예 무력화하려는 심산인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대로 현행 주 단위로 관리되고 있는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하게 되면 산술적으로 특정한 주에 총 92시간까지 근로하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조건의 기준이란 말인가(헌법 32조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미명하에 그동안 수차례 개악이 추진됐던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다시금 추진하려고 하는 모양새다. 최저임금제는 헌법이 국가에 명하고 있는 제도고, 국가에는 근로자의 적정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헌법 32조1항). 최저임금은 근로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정말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보수이므로 어떤 업종에 종사하는지에 따라 최저임금이 달라질 수는 없다. 사용자들의 아우성만을 귀담아듣는 정부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청년 채용을 증진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되는 임금피크제 역시 실질적인 채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고령 근로자들의 임금만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위험이 농후하다. 국가가 나서서 임금피크제 확대를 주창할 것이 아니라, 임금피크제로 인해 부당하게 임금을 차별받는 근로자가 없도록 관리·감독하는 일이 우선이다.
심지어 이번 정부는 이미 폐기된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양대 지침’에 준하는 정책을 다시 도입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월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을 제시해 저성과자 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위해 요구되는 절차를 간소화하고자 했는데, 이 양대 지침은 문재인 정부에서 폐기됐다. 그런데 해고 사유를 확대함으로써 현행법상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근로기준법 23조1항)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 이번 정부에서 다시 일고 있어 우려스럽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역시 노동조합 혹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요하고 있는 현행법(근로기준법 94조1항)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방침을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정하는 근로관계에 대한 규범이므로, 최소한 그 변경 절차만큼은 근로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일터 민주주의’의 참 모습일 것임에도,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든다는 이번 정부는 최소한의 ‘일터 민주주의’마저도 폐기하려는 모양새다. 나아가 기간제근로·파견근로 등 비정규직 사용사유까지 확대하겠다고 하니,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더욱 심화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노사 간 동등한 협력환경 조성’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하며 정부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파업시 대체근로 금지조항을 개선하며,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전면 금지하는 방향의 정책을 도입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야말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 박탈 그 자체다. 애초 기울어진 운동장 안에서 노사관계가 동등할 수 없기에 헌법은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고 노조법을 통해 구체적인 제도들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방침대로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날개를 달아 주고, 파업시 대체근로 사용이 자유로워지거나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전면 금지해 사용자가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면, 노동자들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노사 협상에서 온당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은 더더욱 기울어져, 노동자들은 결국 절벽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선’하고, 사업장 안전규제 중복을 ‘해소’하겠다며 안전규제를 합리화하겠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고 다치는 비극적인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며, 제정 과정에서 인과관계 추정, 5명 미만 사업장까지 전면 적용, 부당한 인허가 및 감독에 대한 공무원 책임자 처벌 등 노동계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기에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앞으로 더욱 견실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 사용자의 의무를 덜어 주고 사용자에게 방패를 쥐어주는 방향으로 법을 바꾸고 규제를 완화한다면, 얼마 안 가 또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스러져 갈 것이다.
정부가 정말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옥죄면서 사용자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날개를 달아 주는 정책을 추진해서는 결코 안 된다. 정부는 원청 사용자의 단체교섭 거부로 촉발된 대우조선해양 파업과 관련해서도 사용자에게는 법과 원칙을 언급하지 않으며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만 법과 원칙을 강요하는 편파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동자들과 그 벗들이 더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이번 정부하에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는 더더욱 멀어져만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