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편집 김효정 기자

고용노동부가 기업의 계열사 간 전출은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을 반영해 ‘업무처리 참고자료’를 일선 지청에 내려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판단으로 대기업이 ‘전출’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판결이 나온 지 한 달도 안 돼 급하게 나온 노동부 가이드라인이 산업현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출 판단 조건은
‘자회사 독립성, 업무 유사성, 원소속 복귀’

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노동부는 최근 계열사 간 전출과 관련한 근로자파견 해당 여부에 대한 참고자료를 일선 지방관서 근로감독관에게 배포했다. 계열사 간 전출은 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다.

노동부가 내부용으로 만든 업무참고자료를 보면 대법원 판단을 사실상 인용했다. <매일노동뉴스>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노동부는 △계열사가 고유사업목적·전문성·인력 등 독립적인 운영조직을 갖출 것 △원소속과 전출 기업의 업무 유사성이 존재할 것 △전출 사유 종료시 원소속으로 복귀할 것 등을 ‘전출’ 판단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14일 SK플래닛 직원 A씨 등 2명이 SK텔레콤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SK플래닛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을 업으로 하는 자(파견사업주)’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전출이 파견으로 인정되면 파견법에 따라 2년을 초과해 일한 노동자를 사용사업주(SK텔레콤)가 직접고용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번 사건은 ‘파견’과 ‘전출’의 판단기준을 대법원이 제시한 첫 사례라 관심이 쏠렸다. 대법원이 계열사 간 전출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자회사가 파견수수료를 받지 않은 점 △자회사의 독립적 조직 운영 △자회사의 사업 목적이 파견과 무관한 점 등을 근거로 SK플래닛은 파견사업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특히 ‘전출’은 원직장으로 복귀가 예정돼 있으므로 파견과 구분된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이 처음으로 제시한 파견사업주 해당 여부를 보면 △파견의 반복·계속성·영업성 유무 △원고용주의 사업 목적과 근로계약 체결 목적 △파견의 목적·규모·횟수·기간·태양 등을 고려해야 한다. SK플래닛은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작성한 참고자료도 대법원 판단과 유사하다. SK텔레콤 사건에서 대법원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일 기업집단’이라고 봤다. 노동부는 이를 근거로 자회사의 ‘독립성’을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전문성을 보유한 직원으로 사업을 운영한 것을 전출 판단 근거로 삼은 대법원 판단에 따라 ‘업무의 유사성’도 조건으로 삼았다. ‘원소속 복귀’ 여부 역시 대법원 판단과 동일했다. 전출 기한은 명시하지 않았다.

“근로감독관 단순이해하면 위험해”
노동부 “판결 요약 불과, 지침 아냐”

그러나 참고자료를 전국의 지방노동관서에 배포한 만큼 근로감독관들의 실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기업들이 자회사를 통해 불법파견을 우회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하는데도 신속하게 자료를 만들어 하달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학계와 법조계는 지적한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는 “노동부가 판결을 요약해 제공하면 근로감독관들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며 “전출 기한을 명시하지도 않고 있어 무한정으로 노동자를 활용할 소지가 있어 요약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대법원이 파견사업주를 형식적으로 판단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자회사 전출 방식을 통해 근로자 공급을 허용해 주는 것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소속 복귀’ 조건에 대해서도 “국내는 일시적으로 사업에 전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러한 단서를 달 수 있지만, 전출을 위해 근로자를 채용하는 방식도 있는데 모든 파견에 해당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 역시 “SK텔레콤 사례의 경우 장기간 다수의 인력을 모회사에서 사용했는데, 사실상 이러한 경우 파견을 ‘업’으로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노동부의 참고자료는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파견 기간이 종료되면 원소속에 복귀하는 것이 파견근로의 전형적 형태인데도 근로관계 실질에 따라 해석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을 요약한 것일 뿐 ‘지침’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이 전출과 파견을 구분한 판결에 대해 설명한 자료”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해석한 내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전출을 악용할 소지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편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한 기준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노동부는 과거에도 계열사 간 전출 사건과 관련해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행정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2008년 11월 행정해석을 보면 민간기업 소속의 임직원들을 도시개발사업의 자산관리회사에 사외파견 형태로 사용할 경우 영리 목적이 아닌 기술지도 등을 위해 근무하도록 했다면 근로자파견과는 다른 전출에 해당한다고 회신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당시 계열사 간 전출의 파견 여부에 대한 기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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