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청사 전경. <홍준표 기자>

장기간 철광에서 광석을 운반하다가 만성폐쇄성폐질환이 발병한 노동자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분진 노출 수준뿐만이 아니라 디젤엔진으로 인한 매연이 질병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단독(최선재 판사)은 최근 광원 노동자 A(75)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이 항소하지 않아 지난달 1심이 확정됐다.

1980년대 구식 광업소, 매연 농도 높아

A씨는 1984년 B광업소에 입사해 1996년까지 약 12년간 철광에서 광석을 운반했다. 그런데 19년이 지난 2015년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진단받았다. 이듬해에는 공단 병원에서 특별진찰을 받아 중등도의 만성폐쇄성폐질환에 해당한다는 소견이 나왔다.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암석 분진과 질소산화물 가스의 노출수준이 상병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다”며 업무관련성을 부정해 불승인했다. A씨가 1986년까지 19년간 하루 한 갑씩 흡연한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자 A씨는 2020년 3월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12년간 철광에서 운반작업을 하면서 유해한 입자나 가스를 흡입했다”며 “당시는 보호장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일하던 시기였으므로, 폐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업무상 재해가 맞다며 공단 판정을 뒤집고 A씨의 청구를 인용했다. 철광의 분진이 탄광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지만, 디젤엔진을 장착한 중장비를 사용해 매연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B광업소는 오랜 기간 국내 유일의 철광산으로서 1991년에야 현대화가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다”며 “디젤장비 차량의 배출 오염물질 측정 연구에 나타난 오염물질 수치 등을 종합하면 A씨는 근무 당시 상당량의 디젤 매연에도 노출됐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A씨가 근무하던 당시에는 유해물질 농도가 높지 않았을 것이라는 공단 산하 직업환경연구원의 소견도 배척됐다. 재판부는 “B광업소의 현대화가 이뤄지기 이전에는 일반적인 다른 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유해물질 등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원 “지하공간 근무, 폐질환 발병 원인”

특히 공단 지침상 기준인 근무기간 20년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단의 ‘만성폐쇄성폐질환 업무처리 지침’은 석탄·분진 등에 20년 이상 노출된 경우 장기간·고농도 분진 노출로 인정하고 있다. 노출기간이 20년 미만이지만 ‘지하공간’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일해도 폐질환 발생으로 간주한다.

재판부는 “A씨가 근무한 기간은 12년으로 20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짧은 기간이 아니고 광석 운반을 위해 오랜 시간 지하공간이나 밀폐된 공간에 머물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퇴사 후 19년이 지나 폐질환이 발병한 것과 관련해서도 “업무로 인한 폐활량 감소가 지속됐다”는 법원 감정의 소견을 들어 업무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장기간의 흡연 역시 폐질환 발병 원인 중 하나라고 보면서도 직업력과 결부해 폐질환 발병과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A씨를 대리한 안혜진 변호사(법무법인 더보상)는 “그동안 철광의 분진 노출 수준은 탄광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직업성폐질환연구소 입장에 따라 철광노동자들에게 발병한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지 못했다”며 “그러나 법원이 디젤엔진으로 인한 유해물질이 폐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매연 수준이 매우 높았다고 판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