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보수작업 중 사망한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의 아내 권금희씨가 16일 오후 동국제강의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수립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고인의 영정 앞에 올리고 있다. <정기훈 기자>

“남편과 같은 사고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38)씨의 아내 권금희씨는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에서 진행된 합의 조인식에서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어느덧 임신 5개월째를 맞은 그는 거듭 안전사고예방을 당부했다. 동국제강 사측 교섭단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안전조치의무를 다하겠다”고 답했다.

장세욱·김연극 공동대표 명의 사과문
“사고예방조치 미이행 인정”

16일 원청인 동국제강은 이동우씨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공개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로 유족과 최종 합의했다. 이날 이후 공동대표 명의로 자사 홈페이지에 일주일 동안 사과문을 게시했고, 추후 유족에게 재발방지대책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합의는 지난 3월21일 이동우씨가 목숨을 잃은 지 88일 만이다. 앞서 양측은 14일 9시간여 마라톤 회의 끝에 잠정합의에 이르렀다.

조인식에는 4월19일부터 분향소에서 농성하다가 파킨슨병을 앓는 남편 간호로 잠시 포항에 내려갔던 고인의 어머니 황월순씨도 남편과 함께했다. 사측 교섭단에서는 실무협상에 임했던 동국제강 상무와 이사, 하청 창우이엠씨 대표가 나왔다.

이번 합의는 4월18일 1차 협상이 시작된 이후 8차례 협상 끝에 도출된 결론이다. 유족은 그동안 △장세욱 부회장의 공개 사과 △사고조사보고서와 재발방지 대책 제공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해 왔다.

‘공개 사과’와 관련해 동국제강은 장세욱 부회장과 김연극 공동대표이사의 명의로 회사 홈페이지에 합의된 사과문을 일주일간 게시하기로 했다. 실제 조인식 이후 회사 홈페이지에는 장세욱·김연극 공동대표 명의로 “고(故) 이동우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사과문에는 “사고예방조치를 다하지 못해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고 고인과 유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협상 과정에서 유족의 반발을 샀던 ‘더 철저히’ 문구는 빠졌다.

▲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이동우씨 산재사망 합의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이동우씨 산재사망 합의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유죄 선고시 ‘징벌적 손해배상’ 논의
사고 석 달여 만에 본사 앞 영결식 진행

유족의 두 번째 요구인 ‘재발방지대책 수립’도 사과문에 포함됐다. 동국제강은 “사업장 내 중대재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ILS시스템(모든 설비에 안전장치를 도입해 우발적인 사고를 막는 시스템)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사는 유가족이 조속히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견이 발생했던 ‘배상’은 유족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민사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회사가 기소돼 형사재판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은 별도로 논의키로 정했다. 합의서 체결 이후에는 양측이 신의성실 원칙에 따른다고 못 박았다.

이동우씨 아내 권금희씨는 조인식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억울하게 죽게 만든 책임자의 사과와 죗값을 받겠다고 남편의 영정사진을 보고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이런 날이 오니 허무하다”며 “종이 한 장이 남편을 대신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 가정을 파괴한 사람들의 죗값을 꼭 치르도록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을 대리한 권영국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고 많은 시간이 흘러 그동안 유족이 받은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할 수 없다”며 “늦게나마 합의에 이르게끔 유족 협상단이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후 7시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고 이동우 노동자 시민사회장’ 영결식을 진행했다. 17일 저녁 포항 장례식장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이튿날 발인 이후 동국제강 포항공장 앞에서 노제가 진행된다. 유족은 장례가 마무리되면 산재 유족들과 함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행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동국제강이 16일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동국제강 홈페이지 갈무리>
▲ 동국제강이 16일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동국제강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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