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7년 5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을 내놓았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부를 페미니스트 정부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젠더폭력에 대한 적지 않은 법·제도적 성과, 내각의 여성 비율 등 국가정책 결정 과정에서 성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 성평등 전담부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성정책 발전에 나름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난달 문재인 정부가 막을 내리고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여성정책에 있어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의 기조를 선택하고 있어 큰 변화가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고작 6회에 그치는 것만 보더라도, 윤석열 정부 내에 여성정책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세대·대상별 공약을 보면 그 대상이 영유아·청소년·청년·부모·노인·장애인·다문화가족 등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인 여성은 제외됐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여성정책은 평가 불가능한 영역일 뿐 아니라 여성정책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윤석열 정부의 여성과 관련된 정책 중 그나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모·부성권의 보장이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현행 10일에서 20일로 연장하고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남녀 각각 1년에서 1.5년씩, 부부합산 총 3년으로 연장한다. 물론 돌봄을 이유로 한 비자발적 경력단절이 빈번히 발생하고, 저출생이 매우 심각한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비추어 보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기간의 연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부성권의 보장 이면에는 ‘차별 없이 사용 가능한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고착된 돌봄노동의 여성화와 노동시장 내 만연한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육아휴직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한다 한들 단순 기간연장으로 인한 정책적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실제로 조사 결과 현재 주어진 1년의 육아휴직조차 다 쓰지 못하는 비중이 60%를 상회한다. 게다가 캘리포니아대(UC) 세계정책분석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육아휴직 기간은 세계 평균의 1.8배, 남성의 육아휴직 기간은 3.3배 긴 것으로 확인된다. 즉 저출생과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문제의 본질은 제도의 길고 짧음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돌봄노동의 여성화와 휴가·휴직 사용 고과평가나 승진·승급에서 불이익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이에 차별금지법의 제정, 별도 기구의 설치 등 중앙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요구됨에도 윤석열 정부의 여성정책 중 차별해소에 관한 정책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몇 없는 여성관련 정책 중 양성평등을 위한 공약으로 성별근로공시제가 포함됐다. 내용을 보면 채용단계에서 지원자와 최종 합격자까지 성비 공시, 근로단계에서 근로자 성비와 승진자 성비, 육아휴직자 성비 공시, 퇴직단계에서 해고자 성비, 정년 은퇴자 성비 공시 등 모든 단계에서 성비와 성별 임금격차를 공시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제도를 면밀히 살펴보면 성별근로공시제의 실효성이 매우 의심된다.
여성계는 오랫동안 성별에 따른 임금·직무·승진·고용형태의 성별격차 데이터를 공개하는 ‘성평등임금공시’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성별‘근로’공시는 표면적으로 성평등임금공시 같아 보이지만 기존 성평등임금공시와 달리 지원자와 근로자·해고자·은퇴자 등의 인적현황 성비 공시가 주요 내용이다. 가장 중요한 임금에 대한 사항은 공시에서 제외된다. 이는 이미 2019년 서울시가 시행한 서울시 임금공시에도 한참 뒤떨어진다. 무엇보다 영국이 2011년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기대 성평등임금공시를 도입했다가 실패한 후 2018년 법 개정을 통해 의무화한 사례가 있음에도, 500명 이상 기업부터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공약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우려된다. 이뿐만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인지, 성비가 불균형할 경우 어떠한 조처를 할 것인지, 여성가족부가 폐지된다면 어느 부처에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실현방안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추진되는 가운데, 폐지 이후의 구체적 여성정책 수행 대안은 없다. 특히 여성차별 문제의 본질을 해소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과 별도 기구 설립 등 해결책은 전무하다. 이대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화된 성차별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뿐더러 여성권리 및 여성정책의 퇴보가 우려된다. 윤석열 정부에는 엄마로서의 여성만 있고, 차별받는 여성노동자는 없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