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득균 공인노무사(강북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코로나19보다 더 관심을 끈 주제는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었다. 지난 3월에 진행된 대통령 선거, 이제 곧 진행되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부동산에 대한 정책과 관심이 뜨겁다. 모두가 부동산, 부동산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아파트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는 입주민들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옆 단지에 비해 부동산 가격 상승 폭이 낮다’는 이유로 용역회사 변경 과정에서 80여명의 60대 이상 경비노동자와 계약해지하고, 40대 경비노동자들을 50여명만 고용하는 경비형태 변경 및 경비원 감원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51대 49로 경비노동자 감원안은 부결됐으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전 실시된 2019년 감원 투표에 비해 찬성 비율이 매우 높아졌다.

또 다른 아파트에서는 2021년 7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 회장이 바뀐 뒤 관리소장과 갈등이 있다는 이유로 관리비를 집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당 단지에서 근무하는 경비노동자·청소노동자·관리사무소 직원 등 노동자 70여명의 급여가 6개월 이상 체불된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청 진정을 통해 현재 모든 급여가 지급됐으나, 올해 말 용역회사 변경 과정에서 경비노동자와 청소노동자 중 대다수의 고용이 거절될 가능성이 있다.

경비노동자와 청소노동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비정규 노동자다. 아파트 단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입주자대표회가 쉽게 쓸 수 있는 방안은 경비체계를 바꾸면서 현재 경비노동자 중 대다수를 내보내는 것이다. 일부 입주민들은 경비노동자·청소노동자를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생계에 대한 결정 권한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렇게 지속적인 고용불안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고용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공동주택현황에 따르면, 관리회사가 주택관리를 위탁받아 아파트를 관리하는 비율은 전체의 70%다. ‘2019년 서울시 경비노동자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경비·청소 용역회사에 소속된 간접고용 비율은 90%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원에서는 간접고용시 용역회사가 변경된다면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다. 해당 판결을 이유로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 감원 투표를 용역회사 변경 시점에 진행한다. 혹은 입주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비노동자를 내보내기 위해 경비 용역회사를 변경하기도 한다.

최근 대법원은 ‘고용승계’ 기대가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고용승계 의무를 진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① 새로운 용역회사와 도급인이 작성한 도급용역계약서상 고용승계의무 조항이 있거나, ② 수차례 용역회사 변경에도 고용이 승계됐고 새로운 용역회사가 이미 이전에도 용역계약을 맺고 업무를 수행해 고용승계 관행이 있었다는 점을 알고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고용승계를 인정해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특히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경우 ‘고용승계에 대한 특약’이 없다면 ‘고용승계 기대’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5월 국회에 ‘사업이전에서의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발의됐다. 같은 단지·현장에서 근무하는 용역회사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 용역회사 변경시에도 고용승계를 의무화하는 것이 뼈대다. 해당 법안이 통과하면 용역회사 변경으로 인한 감원, 고용 불안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발의된 지 1년이 넘은 현재 환경노동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용역회사를 변경할 때마다 경비노동자의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일부 부동산 가격에 대한 욕망에 눈이 멀거나, 노동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가진 입주민들로 인한 고용불안 문제가 매번 생긴다.

2014년과 2020년. 두 분의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의 갑질 때문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경비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아파트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사는 아파트를 만들자는 의견을 가진 입주민들이 늘어났다.

경비·청소노동자들은 아파트 공동체의 일원으로 단지를 위해 노동을 하는 ‘사람’임을 인지하며 부동산 가격보다 ‘사람’이 먼저인 아파트 문화가 형성되고, 경비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입주민들의 발언이 힘을 얻어 용역회사 변경시 고용승계를 약속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경비노동자들의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보다 그 부동산을 위해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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