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열리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가장 뜨거운 의제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강제노동의 폐지 △아동노동의 철폐 △차별 금지 네 영역으로 이뤄진 ‘일의 기본 원칙과 권리(Fundamental Principles and Rights at Work)’에 직업안전보건(occupational)을 다섯째 영역으로 추가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내에서도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ILO협회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지난 20일 ‘ILO 중대재해예방 협약 비준 및 산업안전보건 기술협약의 기본협약 격상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정책토론회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토론회 개회사에서 이광택 한국ILO협회장은 “ILO는 1993년에 중대산업사고예방협약(제174호)을 채택해 특히 유해물질로 인한 재해와 시민재해에 대한 대처를 준비한 바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 협약 비준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수진 의원은 인사말에서 “매년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부상과 질병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으며 그 중 800명은 산재사고로 사망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아직 노동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토로했다.
토론회에는 필자도 발표자로 초청받아 ILO가 1993년 채택한 중대산업사고예방협약(174호)과 산업보건서비스협약(161호)에 대한 소개와 비준 전망을 발표했다. 그리고 오상호 창원대학교 교수(법학)가 ILO 총회에서 기본협약으로 지위가 변경되는 안전보건 관련 기술협약들(Technical Conventions)에 대해 소개하고 총회에 참가하는 노사정 3자 그룹의 입장을 평가했다.
1919년 출범 이래 ILO는 모두 190개의 협약을 노사정 3자 합의로 채택했다. 190개 협약은 기본협약 8개, 우선협약 4개, 기술협약 178개로 이뤄져 있다. 안전보건 협약들은 기술협약의 범주에 속한다. 기술협약은 회원국이 비준을 해야 ILO가 기술적 지원과 점검 등으로 국내적으로 관여할 여지가 생긴다. 반면, 기본협약은 회원국 정부의 비준 여부에 상관 없이 관련 협약의 실행 여부를 ILO와 같이 점검해야 한다. 쉽게 말해, 기본협약은 ILO가 만드는 국제노동기준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fundamental) 최저 기준이므로 회원국의 비준 여부에 상관없이 ILO가 국내적으로 관여할 여지가 있다.
안전보건 협약들을 기본협약의 범주에 넣기 위한 ILO 논의는 크게 세 쟁점이다. 첫 번째 개정될 ‘일의 기본 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근무환경(working environment)’과 ‘안전하고 건강한 근무조건(working conditions)’ 가운데 어느 개념을 채택할 것인가다. 국제연합 등 국제기구의 논의를 볼 때, 20세기에는 근무조건이라는 개념을 많이 썼지만 21세기 들어 근무환경이라는 개념이 확산해 왔다. 특히 국제연합은 자신의 핵심사업인 지속가능개발(SDG) 목표 8.8에서 “모든 노동자를 위해 안전하고 안정된 근무환경을 증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ILO 344차 이사회 회의록을 소개한 오상호 교수의 발표문에 따르면, 사용자대표는 “근무환경이라는 용어가 너무 모호하고 회원국에 새로운 의무를 생성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면서 근무환경보다는 기왕에 써 온 근무조건이라는 용어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반면에 노동자대표는 국제연합의 SDG를 근거로 들면서 “근무환경이라는 용어가 새로운 근무형태와 일터에서 안전보건과 관련해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대표의 입장은 나라별로 뒤섞여 있다.
두 번째 쟁점은 안전보건에 관련된 기술협약들 가운데 어떤 것들을 기본협약으로 그 범주를 변경할 것인가다. 대략 스무 개에 달하는 안전보건 협약들 가운데 그 범주가 기술협약에서 기본협약으로의 변경이 논의되는 협약은 3개다. 직업안전보건협약(155호), 직업보건서비스협약(161호), 직업안전보건체계증진협약(187호)이다.
협약 155호는 안전보건정책을 수립할 국가의 의무와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증진할 사용자의 책임을 규정한다. 협약 161호는 필수예방기능(essentially preventative functions)을 담당할 기업 수준의 보건서비스 체제 수립을 규정한다. 협약 187호는 노사정 3자 대화를 통해 직업안전보건 문제를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다룰 정책과, 체계를 수립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다. 사용자 그룹은 155호와 187호의 조합을 선호하고, 노동자 그룹은 155호와 161호의 조합을 선호한다.
한국ILO협회 토론회에서도 노사 입장은 달랐다. 토론자로 나선 임재범 한국노총 산업안전본부 실장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실장은 161호를 강조했고, 전승태 경총 산업안전팀장은 187호를 강조했다. 손필훈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과장은 비준에 앞서 안전보건문화의 정착과 현장 상황의 실질적 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 번째 쟁점은 필자가 제기한 것이다. 토론회는 제목에서 안전보건 협약을 기술협약에서 기본협약으로 변경하는 것을 “격상”이라 표현했는데, 필자 생각에는 ‘격하’라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기본협약은 정부의 기본적인 노동행정을 규정하는 우선협약과 더불어 ‘일의 세계(the world of work)’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를 다루는 큰 마당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큰 마당에서 다루는 본격적인 문제들이 178개에 달하는 기술협약이다. 그중 안전보건 협약 한두 개를 그 마당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으로 옮기는 것이 안전보건기준 ‘기본협약화’의 본질이다. “격상”이라는 표현은 기본협약을 ‘핵심협약’으로 오역해 온 기존의 관행과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격상’보다는 기술협약에서 기본협약으로의 ‘변경’이 올바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