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1일 국회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된 법률은 공포일부터 6개월 후인 8월4일부터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130개 사업장에 적용될 예정이고, 위 공공기관들은 비상임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기관부터 반드시 노동이사 1명을 선임해야 한다.
법안을 사람으로 빗대어 본다면, 이 법안은 꽤나 운이 좋은 녀석이다. 3월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저마다의 셈법으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찬성한 탓에 국회에서 큰 반대 없이 통과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차별금지법과 비교해 보면, 이 녀석은 꽤나 천운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지나친 운이 질투를 부른 걸까. 이 녀석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 앞날을 우려하고, 비난하고, 나아가 저주하는 듯한 말과 글들이 넘쳐 난다. 이런 말과 글들은 대체로는 짐짓 객관적인 입장인 듯 점잖게 등장하는데, 예컨대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노사 간 힘의 불균형 심화가 예상”되고, “노조로의 편향적 기울기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으며, 결국에는 “기관장이 노조 눈치나 보게 될 우려가 크다”는 식이다. “이미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젠 아예 뒤집어졌다”는 글귀를 읽다 보면, 나와 글쓴이가 같은 시공간을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아무리 곱씹어 봐도, 위와 같은 분석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법안은 ‘운’이 좋을 뿐, ‘힘’이 좋은 녀석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개정 법률은 공공기관 이사회에 노동이사 1명이 참여하는 형태다. 기관장을 포함해 십수 명의 이사들 중 단 1명이므로, 이사회 의결을 좌우할 만한 숫자가 전혀 아니다. 물론 경영진이 제안한 안건에 대해 별다른 검토 없이 거수기 역할만 수행하는 이사회라면 노동이사의 등장이 불편할 수 있겠으나, 이사회는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 아니던가.
둘째, 개정 법률은 노동이사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아무런 특례를 두고 있지 않다. 사실 그동안 공공기관 이사회의 문제점으로 비상임이사 제도의 형식적인 운영이 지적됐음을 감안하면, 노동이사도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 노동이사에 대해, 나아가서는 전반적인 비상임이사의 권한을 확대해 ‘이사회 안건부의권’이나 ‘재심의 요구권’ ‘경영사항에 대한 감사의뢰권’ ‘경영정보에 대한 자료요구권’ 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노동이사는 비상임이사이므로, 노동자로서 본래의 직무와 노동이사로서의 직무를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노동이사로서의 활동이 실효성 있게 보장되려면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지원인력 등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하는데, 개정 법률은 이에 대해 현재까지 아무런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향후 하위법령이나 정부지침을 통해 노동이사 활동을 지원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넷째, 무엇보다 노동이사의 노동조합원 자격 유지가 문제 되고 있다. 개정 법률은 노동이사의 조합원 자격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이미 기획재정부는 조합원 자격 박탈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양새다. 주된 근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인데, 노동이사는 임원이기 때문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 또는 “항상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엥? 잘못 쓴게 아니냐고? 아니다. 정말로 저 이유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단다. 그렇다면 앞서 살펴봤던 수많은 말과 글들은 무엇이었을까?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노사관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의사결정 지연이 우려’되며, ‘노조의 집단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가 조장’된다는 말과 글들 말이다. 그토록 야멸 차게 비난하다가, 노조 가입이 문제되자 “노동이사는 항상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자”라고 치부하는 태세전환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노동이사제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데,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계속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이번 개정 법률에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공공기관의 민주적 운영과 공공성 강화에 힘을 보태는 의미 있는 제도라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모쪼록 노동이사제의 앞날이 탄탄대로이기를. 그리고 하나 더, 운동장은 도대체 어디로 기울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