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 ​이슬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A씨는 직속 상사에게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회사에 신고했다. 회사는 A씨에게 조사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하라고 지시하고, 곧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조사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그럴수록 A씨는 신고를 하기 전보다 더 위축됐다. 자신이 신고한 행위가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판단을 받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게다가 조사기간 동안에는 기존에 A씨가 하던 업무 중 직속 상사와의 출장업무를 동료들이 분담해 수행했는데, 이로 인해 업무가 과중해지자 동료들의 불만이 점차 쌓여 갔다. A씨는 업무분장을 다시 해서 동료들에게 업무량이 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회사에 말했지만, 회사는 A씨를 직속 상사와 분리했으니 또 다른 조치를 해 줘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상 회사는 직장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조사기간 중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해 피해를 당한 근로자 또는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해당 피해 근로자 등에 대해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회사가 법적 의무를 다했다고 자신 있게 답하려면 피해 근로자 등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그에 맞게 적절한 조치를 다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가 필요한 경우일까? 어느 정도가 적절한 조치인가? 법에서 나열하고 있는 근무장소 변경과 유급휴가는 회사가 내릴 수 있는 조치의 예시일 뿐이어서, 동일한 행위에 의한 사건일지라도 신고인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조치가 다를 수 있고, 사업장 상황이나 조직 분위기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법에서 예시하고 있는 조치를 취했다고 해서 무조건 법적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회사는 직장내 괴롭힘 사건을 둘러싼 조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야 한다. 이를테면 신고인의 정서적 상태나 불편하고 걱정되는 점이 무엇인지, 이런 상황이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지, 관련자들의 업무가 서로 어느 정도로 중복되는지, 사건 관련자들의 업무특성상 재택근무가 가능한지, 결재라인은 어떻게 조정하는 것이 좋을지,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조직 구성원은 누가 있으며 그들은 해당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조직 분위기는 어떤지 등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직장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도 마찬가지다. 피해 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고, 괴롭힘 행위자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단순히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조치를 취해서도 안 된다. 때때로 어떤 피해자들은 괴롭힘 행위자가 무조건 중징계를 받기를 원한다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막상 행위자에게 중징계가 내려지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졌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고, 그 결과가 조직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신고인이 되레 고립되는 경우도 있다. 행위자에 대한 징계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조직문화를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직장내 괴롭힘 재발을 위해 더 중요하고 필요한 조치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법 규정이 이렇게 모호해도 되는 거냐고, 법을 지키는 게 너무 어렵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직장내 괴롭힘이나 직장내 성희롱 조사위원으로 들어갈 때, 필자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느낀다. 사람도, 사건도, 사업장 여건도 매번 달라서 늘 새롭게 고민하게 된다. 사건을 많이 접할수록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점점 많아진다.

그럼에도 법규정상 ‘필요’와 ‘적절’이라는 단어의 모호함이 주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법에서 일률적인 조치를 규정하는 것보다 사건과 사업장 여건을 가장 잘 아는 회사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를 찾아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사건 해결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해야 피해자의 회복이 수월해지며, 직장내 괴롭힘이 반복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되기 전부터 이미 회사에는 근로관계에서 비롯한 배려의무로서 근로자의 인격권 보호 및 쾌적한 근로환경 제공의무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자. 어쨌거나, 노동안전에 대한 책임은 회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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