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가장 많은 표를 몰아준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경북 군위군이다. 투표장에 나온 군위군민 83.19%가 윤 후보를 찍었다. 덕분에 김영만 군위군수는 지난달 25일 인수위 집무실에서 윤 당선자와 독대했다.

228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6번째로 인구가 적은 군위는 관광 명소도 없고 산업단지도 없어 소멸 위험이 높은 지자체다. 바쁜 대통령 당선자가 인구 2만2천945명의 초미니 지자체장을 만났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 경제3면에 ‘尹당선인 찾아간 지자체장, 소멸위험 1위 군위’라는 문패를 단 큼지막한 르포 기사를 실었다. 지역을 살리려고 별짓 다했지만 소용없었다는 나이 일흔의 군수는 사람이 떠나 텅 빈 집 마당에서 버려진 그릇을 들고 조선일보 카메라 앞에 섰다.

군위는 소멸 위험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소멸 위험도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 대비 20~39세 여성 인구 비율인데, 군위는 지난해 0.11로 전국 최하위였다. 김 군수는 출산율을 높이려고 자녀 낳는 주민에겐 첫돌 축하금, 출산 장려금 등 각종 지원금을 주고 셋째 자녀를 낳으면 최대 1천620만원을 줬다. 초·중·고를 군위에서 졸업하면 모두 500만원을 주고, 군내 고교 졸업생에겐 사회정착금 200만원도 준다. 김 군수는 이런 인구 부양책도 소용없었다고 말한다.

2018년 군내 전체 출생아가 100명 아래로 떨어진 이래 지난해까지 계속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군위군 출생아는 55명으로 사망자 370명의 6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군위군수는 대구공항을 군위에 유치해 청년을 불러모을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고, 대구시에 편입해 부산 기장군이나 인천 옹진군처럼 인구를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서도 이 얘기를 했을 것이다.

군수의 희망과 달리 조선일보는 인구정책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일자리 창출이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10~20년 뒤엔 20~30대 인구가 현재보다 20만~30만명씩 줄기 때문에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갈 사람 자체가 없다.

출산장려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고, 여기에 인구 전문가들은 일자리 창출할 인프라를 만들어도 들어와 일할 청년이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이날 르포 기사에서 군위군수 말만 받아쓰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선일보는 일자리를 창출할 공항만 유치하면 만사형통이라는 군수의 생각을 사실상 비판했다.

그렇다. 출산 지원제도와 일자리 창출 같은 하드웨어 위에 결혼·임신·출산·육아와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사회적 자산(소프트웨어)을 풍부하게 갖춰야만 인구 소멸을 막는다.

이렇게 기특한 르포 기사를 썼던 조선일보는 지난 5일 ‘34년 된 낡은 최저임금제, 업종·지역별 차등화부터 검토를’이란 제목의 사설을 썼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주변과 총리로 지명된 올드보이 한덕수 입에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급격 인상이 문제였다는 발언이 나온 직후였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대도시냐 시골이냐에 따라 물가, 고용 여건과 지불 능력이 크게 다른데 전국 모든 작업장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주도록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을 뿐더러 공정하지도 않다”고 했다.

조선일보 말대로 최저임금을 서울엔 시간당 1만원, 경북 군위엔 5천원 하면 군위군 청년 인구는 어떻게 될까. 군위 청년들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탈(脫)군위’할 게 뻔하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일하는 군위군 CU 편의점이 롯데껌을 서울의 절반 가격에 파는 것도 아니다.

전두환 정권 말기에 심의 의결해 1988년 노태우 정권에서 첫 도입할 때 업종별로 차등했던 최저임금을 왜 지금은 일률로 똑같이 정했는지 좀 알아보길 바란다. 최저임금을 업종·지역별로 차등하자는 건 최저임금을 깎자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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