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를 비난하자 같은 당 김예지 의원이 이를 반박하며 “장애인 콜택시를 타는데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많다”며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연합뉴스가 지난달 31일 김 의원 발언을 팩트체크해 ‘장애인 콜택시 타려고 2시간 기다리는 경우 많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연합뉴스는 서울시설공단 자료를 활용해 평균 대기시간이 30분에 불과하기에 김 의원 발언이 사실상 틀렸다고 평가했다. 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월 평균 대기시간은 29.5분이라는 거다. 공단 자료엔 2시간 이상 기다린 사례는 전체 탑승 건수의 1%에 불과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연합뉴스 기사대로라면 공당의 국회의원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소리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기다리다가 외출을 포기하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 사례는 이 자료에 반영되지 않았다. 장애인단체는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장애인 콜택시 제도의 근본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며 연합뉴스를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연합뉴스의 팩트체크 기사를 팩트체크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5일 8면에 ‘장애인 콜택시 30분 걸려도 괜찮나? 현장 상황 못 읽은 통계 보도 꼬집어’라는 기사를 썼다. 경향신문은 공단이 내놓은 평균 대기시간 29.5분은 과연 정상인지 되묻는다. 장애인은 택시 타는데 30분씩 기다려도 되는 사람일까. 장애인이라면 응당 그 정도는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가.

연합뉴스는 강한 부정의 뜻을 지닌 의문형 제목을 사용했다. 제목에 달린 ‘2시간 기다리는 경우 많다?’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도 잘 모른 채 굳이 이런 극단적인 제목을 달아야 했을까.

공단 자료가 모두 ‘탑승 건수’를 둘러싼 통계라는 걸 조금만 주의 깊게 살폈다면 이렇게 강한 제목을 달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탑승 3천344건 가운데 2시간 이상 기다린 사례가 35건에 불과하지만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 않은가. 택시 타려고 2시간 이상 기다리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평균 대기시간인 30분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 언론 수용자는 팩트체크 기사조차 팩트체크하면서 읽어야 한다. 괴로운 일이다.

조선일보의 지난 2일자 ‘부엌에서 중대재해 나면 누가 처벌받아야 할까’라는 제목의 기자 칼럼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칼럼은 “부엌에서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누가 처벌받나. 부엌일 손끝 하나 까딱 안 한 사람이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묻는다. 그동안 조선일보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얼마나 야유를 퍼부었는지 잘 알지만 ‘살림하는 중년 남자’라는 제목으로 문화면에 실리는 칼럼에서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을 조롱하고 저주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일하던 노동자가 분쇄기에 말려 들어가 죽었는데도 기업주는 벌금 500만원만 내면 그만인 노동시장이 정상인가. 이런 노동안전 불감증을 고치려는 고육지책으로 탄생한 게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이런 법을 조롱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행사 때마다 성조기를 흔들며 성소수자를 비난한다. 그들은 퀴어축제 때마다 저주를 퍼붓지만, 정작 주한 미대사관은 매번 이 축제에 축하와 지지를 표했다. 미 국무부는 11일부터 여권 신청서에 여성과 남성 외에 제3의 성을 가리키는 ‘젠더 X’를 추가한다고 밝혔다.

혐오의 시선을 걷어 내고 당연하게 여겼던 사실에 의구심을 품는 기자들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발전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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