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경총 회장·대한상의 회장·무역협회장 등에 전경련 회장까지 포함한 경제단체장들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불러 도시락 회동을 했다. 언론은 이날 회동에 전경련이 참석한 것에 관심을 두고서 문재인 정권에서 대한상의에서 전경련으로 경제단체의 힘이 바뀌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했지만 그건 내 관심이 아니다. 단지 거기서 당선자와 나눴을 대화에 관심이 있을 뿐인데, 참석했던 경제단체장들은 기업규제 완화 요구를 쏟아냈던 모양이다.
이날 윤석열 당선자가 “우리나라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경제를) 탈바꿈해야 한다”며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기업이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게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고 하니(매일노동뉴스 2022. 3. 22.), 이에 그들은 신이 나서 노동에 대한 이러저런 규제를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회동을 보도한 뉴스 기사를 보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최저임금제를 대폭 개정하자거나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하자”는 건의가 나왔다. 여기에 더해 25일 경총은 그 구체적인 목록을 정리해서 인수위에 ‘신정부에 바라는 기업정책 제안서’로 전달했다고 28일 보도됐다. 당선자와의 회동에서 한 경제단체장들의 말과 제안서 목록을 읽어 보면, 오늘 이 나라에서 사용자 자본이 노동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파악할 수가 있는데, 그 바람은 경총 제안서에 정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2. 경총은 제안서에 대해 “손경식 (경총) 회장이 3월21일 윤석열 당선자와의 간담회에서 강조한 노동개혁 및 노사관계 선진화,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등 주요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담아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안서는 첫째 도전과 혁신의 기업가정신을 위한 법·제도 개편, 둘째 기업 투자의욕 제고를 위한 조세제도 개편, 셋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넷째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는 노동법제 선진화, 다섯째 안전한 일터 조성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경영환경 구축, 여섯째 미래세대와 공존하는 사회보장체계 확립 등 6대 분야로 구성됐다. 이중 셋째 분야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는 근로기준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같은 법개정과 최저임금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을 제언한 것이라고 한다. 넷째 분야인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는 노동법제 선진화’는 산업현장 불법행위 근절 방향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편을 제언한 것이라고, 다섯째 분야인 ‘안전한 일터 조성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경영환경 구축’은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산재예방행정체계 구축, 탄소중립 및 온실가스 감축 등에 대해 제언한 것이라고 경총이 밝히고 있다.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경총은, 신정부가 추진해야 할 핵심 노동개혁 과제로 셋째 분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고용 경직성 완화, 근로시간 운영 유연성 확대, 임금체계 개편 등), 넷째 분야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는 노동법제 선진화(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 등)를 선정하고, 신정부에서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보도자료에서는 “이번 제안서는 지난 12월 윤석열 당선자(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경총을 방문하셨을 때 전달해 드린 건의사항들을 구체화한 것이다. 제안서에 담긴 과제들이 향후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이며, 법률개정 사항 등 장기 검토 과제에 대해서는 신정부와 지속적으로 협력하면서 경영계의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고 이동근 경총 부회장이 밝혔노라고 덧붙여 강조해 놓았다.
이상을 통해서 보면 경총을 포함한 이 나라 사용자단체가 윤석열 정권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넉넉히 알 수 있다. 노동에 대해 사용자 기업편에서 각종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함께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이번 제안서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3. 여기서 이러한 경총의 제안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분야에서는, 해고에 있어 근로자의 일신상 사유 내지 행태상 사유로 해고사유를 명확히 하고 사용자에 금전보상제 신청권을 부여하는 등으로 고용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보다 간명하게 사용자가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부당해고시 복직 대신 사용자가 금전보상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노동자에게는 성과부진자 퇴출을 위한 해고를 포함해서 보다 쉽게 해고되고 부당해고라도 복직하지 못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파견법과 관련해서는 파견법 위반을 처벌하기보다는 적법하게 도급을 활용하도록 노동행정력을 집중하고 파견 허용업무의 규제 방식을 현행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서 파견법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경총은 제안하고 있다. 사용자가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고서 도급으로 합법적으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노동행정을 집중해 주고, 파견 허용업무 규제를 완화해서 사용자가 보다 쉽게 파견근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기간제법에 관해서는 최대 2년인 현행 사용기간을 당사자 합의로 2년 추가 연장할 수 있도록 완화해 줄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 마디로 경총은 파견·기간제 등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것이고, 규제 없이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을 현재 조건에서 이렇게 드러낸 것이다.
근로시간 유연성 확대에 관해서 경총의 제안서에는 연구개발 분야의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폭넓게 허용하고, 유연근로시간제에 관해 전체 근로자대표가 아닌 업무 단위(부서·팀 등)별 근로자대표 합의로 도입할 수 있도록 하며, 연장근로 산정기준을 주 단위에서 연·월 단위로 변경하고,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정산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며, 재량근로시간제를 개별 근로자 동의로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있다. 유연근로시간제 도입을 쉽게 하고 단위·정산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는 방법 등으로 1일 8시간, 1주 40시간(연장근로 포함 52시간)이라는 근로기준법 규제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그밖에 경총의 제안에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경우 집단적 동의 요건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고 업종별·지역별 구분적용 및 결정체계 개편 같은 최저임금법 개정,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현행 근로기준법 개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4. 계속해서 경총의 제안서에서는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는 노동법제 선진화 분야로 산업현장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른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고, 쟁의기간 중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직장 점거를 금지하며 부당노동행위의 형사처벌을 삭제하되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를 신설하는 노조법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 여기서 불법행위에 대한 법과 원칙에 따른 무관용 원칙이란, 노동자·노조가 사용자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한 불법파업과 집회 등 집단행동에 대한 것을 말한다. 이 대한민국에서 파업 등 쟁의는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 노조법상 규제로 인해 웬만하면 불법으로 취급되니 사용자 자본은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노동자·노조의 불법행위에 법과 원칙에 따른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당당히 제안하는 것이겠다.
5. 이렇게 경총이 인수위에 보낸 제안서를 읽어 보니 윤석열 당선자가 발표한 노동공약과 일정 부분에서 일치하는 게 보인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총의 제안은 어디까지나 사용자 자본의 바람을 담고 있는 것이다. 철저히 노동에 대해 자본의 이해에서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고 내세우는 나라에서는 감히 입법하겠다고, 그 법을 집행하겠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 이 나라에서 아무리 부끄러워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24일 고용노동부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인수위에 보고했다고 보도됐다. 윤석열 당선자의 노동공약과 관련된 내용에 관해 검토해서 방안을 찾는다고 했다.
후퇴시키려는 걸 지켜보면서 비난해야 하는 일,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타령으로 살아가는 내게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도 무작정 후퇴한다고 그저 절망할 일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위에서 살펴본 경총의 제안 내용은 대부분 근로기준법·파견법·기간제법 등 법 개정 사항이다. 국회의원 다수가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후퇴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안은 실현될 수 없다. 아무리 윤석열 당선자가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겠다고 해도 별 수가 없다. 어째서 이 나라 대통령 선거운동에서는 자신이 이행할 수가 없는 공약을 발표해도 되는 것일까. 대통령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사항만 공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다 해내겠다고 공약하니 말이다. 이렇게 끄적거리고 보니, 노동부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 확대 방안 등을 인수위에 보고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저 방안이나 만들어 보고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경총의 제안서를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도대체가 궁금하다. 이 나라에서는 앞으로 얼마나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