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그리고 윤석열 후보의 당선 이후 그의 공약과 언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분석하고 운동조직별로 자신들의 구체적 요구를 수용하라는 활동도 유행처럼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솔직히 말해서 윤석열 당선자 공약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선거공학적으로 짜깁기된 것일 뿐 윤석열 정부의 실제 국정운영안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과거를 떠올려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도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 실제 결말은 독자들도 알고 계실 것이다.

필자가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지점은, 윤석열 당선자가 인생의 대부분을 검찰 조직에서 보냈고 검찰권력의 핵인 검찰총장까지 한 인물이란 점이다. 새 정부의 실제 운영이야 정권교체와 무관한 ‘늘공’들이 하겠지만, 통치 스타일은 제왕적 대통령이 좌우할 것인데 윤석열 당선자의 직업적·공적 경험은 검찰뿐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어떤 조직인가. 대한민국 사법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문준영 부산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역작인 <법원과 검찰의 탄생>을 잠시 살펴보자.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19세기 유럽대륙에서 정립된 근대적 검찰제도로부터 완전히 일탈한 비민주적 검찰제도를 경험한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에도 검찰에 대한 의회(국민)의 통제, 검사의 수사와 소추에 대한 법원과 시민의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검찰사법체계가 유지돼 왔다. 범죄 피해자·피의자 및 피고인·일반 시민·의회와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권력으로부터 검찰 독립은 검찰조직의 비민주성·폐쇄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도착됐다.

문재인 정권과 유착된 권력집단의 ‘내로남불’ 통치에 혐오감을 느낀 유권자들은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서 ‘공정’과 ‘법치’의 이미지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충성하는 조직은 주권자·시민이 아니라 시민 위에 군림하는 검찰조직이며, 그의 법치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법’이란 현재의 권력구조와 자원 분배를 지탱하기 위한 법이며, 시민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법은 아닐 것이다.

일제 식민통치하의 치안유지법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가보안법, 형법에 이르기까지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은 기존의 권력구조와 자원분배방식에 저항하는 집단으로서 탄압 대상이 돼 왔다. 우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벌칙에 관한 장(88조~96조)에서 4개 항목만이 사용자가 그 대상이고, 나머지 30여개 항목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처벌 대상이라는 점에서 극명히 드러나는 것처럼, 현행 노조법은 노동 3권 보장법이 아니라 19세기적 노동형법에 가깝다.

노동부·대법원의 불법파견근로 인정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재벌·원청 사용자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거듭하면서, 이러한 불법을 시정하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십수 년을 구형하는 권력집단의 비민주적·반민중적 행태가 윤석열 정부에서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불평등하고 수탈적인 현재의 권력구조와 자원분배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시민의 집단적 힘을 ‘불법’으로 낙인찍고 억압하려는 제도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런 폭력적 국가기구의 전면적 부상에 맞서는 노동자와 사회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통령직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 하고, 윤석열 당선자 내지 대통령과 만나자고 하는 것으로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 기간인 ‘민주노조운동의 잃어버린 15년’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유권자들이 호응한 ‘공정’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하고 수탈적인 현재의 구조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줄 수 있는 운동적 요구를 구체화하고, 그런 요구를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운동 내부의 질서를 스스로 개혁하고자 분투하는 것, 청원이 아니라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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