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와 사회공공연구원 주최로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열린 에너지 민영화 저지 파업 20주년 기념식 및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02년 2월25일 발전·가스·철도 노동자들이 공동파업에 돌입했다. 이른바 ‘민영화 저지 파업’이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김대중 정부는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 분할 매각과 에너지 시장 개방을 시도했다. 전력산업·가스산업 구조개편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와 서비스 수준 향상이라는 미명하에 추진된 민영화는 38일간의 파업 끝에 중단됐다. 하지만 에너지 민영화는 정말 멈춰 섰을까. 지난 20년 동안 민영화는 은밀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다.

한전 민영화는 저지했지만…
“발전사 간 경쟁체제, 위험의 외주화 불러”

공공운수노조·사회공공연구원·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민영화 저지 파업 20주년을 기념해 ‘기후위기의 시대, 사회공공성을 다시 생각한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비록 한전 민영화는 저지됐지만 신자유주의 에너지 정책은 노동현장에 상처를 아로새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준모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공기업들은 불합리한 경쟁체제 속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를 사기업처럼 변화시키고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안전을 희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와 경상정비 분야에서 민간개방이 확대된 구조적 원인도 발전사 분할이라는 평가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발전 5사 간 경쟁은 민간기업처럼 경쟁을 통해 매출을 올리는 방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을 통해 경영평가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귀결됐다”며 “관리인력 증가와 현장인력 부족, 이직률 상승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도 발전사 간 경쟁구조가 일으킨 비극으로 꼽힌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발전사 간 경쟁체제 속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고착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년간 이어진 ‘은밀한 민영화’
기후위기 맞아 민영화 논리 다시 부각

구준모 연구위원은 공기업이 수익성에 목표를 두고 경영 관행을 민간기업처럼 만드는 ‘내부적 민영화’와 민간기업에 발전사업 진출을 허용해 민영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우회적 민영화’를 통해 지난 20년간 은밀한 민영화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정부들은 민간기업에 LNG발전소와 석탄발전소 사업을 대거 허용했다. 공기업에는 민간기업과 합작법인을 만들 경우에만 신규 발전사업을 승인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민간기업에 문호를 개방했다.

천연가스 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는 LNG발전소를 소유한 포스코·SK·GS 등 민간기업에 자가소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천연가스 직수입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2020년 민간기업의 천연가스 수입량은 전체의 22%에 이르렀다. 천연가스 산업에서도 내부적 민영화와 우회적 민영화를 통해 은밀한 민영화가 지속됐다는 평가다.

이 같은 민영화 흐름은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민영화와 전력시장 개방이 유일한 길이라는 논리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은 전력이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인력 육성, 재생에너지 기술개발과 녹색금융 지원 같은 보조적 수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구를 살리는 에너지 전환의 주체로 나서자”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지구를 살리고 미래의 삶을 보장하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주체적으로 나설 것”을 선언했다.

이들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동자 선언’에서 “민영화 저지투쟁 승리 이후 우리 노동자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고민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동의하는 시민들과 종교인, 청년, 농·어민과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며 공동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정부가 시장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년 전과 같은 마음으로 다시금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