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노동자 3명이 스타벅스의 노동조건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트럭에 얹어 시위를 벌였다. 트럭 시위를 주도한 이른바 ‘총대 3인’은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 지원하겠다”는 민주노총의 논평에 대해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미국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긴 짧은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졌다. 뉴욕주 버팔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의 노동자들이 교섭대표노조 인준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기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었다.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어떠한 교섭단위의 노동자들을 대표해 단체교섭을 하기 위해서 해당 교섭단위 노동자 전체가 참여하는 인준투표에서 승리해야 한다. 버팔로 노동자들의 인준투표 승리는 미국 스타벅스에서의 첫 사례로 이후 애리조나주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냉담한 반응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노동자들을 ‘파트너’로 호명하며 창사 이후 50년간 노조 결성을 차단해 왔던 미국 스타벅스에서는 노동자들이 단체교섭권을 쟁취하기 위해 열렬히 싸워 왔다. 사실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싸움은 지난해 내내 이어졌던 미국 노조운동의 투쟁 물결 중 하나였다. 지난해는 미국 역사상 1970년대 이후 가장 활발하게 교섭대표노조 인준투표 운동이 전개된 해였다. 뿐만 아니라 “STRIKETEMBER(파업의 9월)” “STRIKETOBER(파업의 10월)”라는 신조어가 생겨 날 정도로 기록적인 파업의 물결이 이어졌다.
지난해 봄에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성 빈센트 병원 간호사 파업과 워리어 멧 탄광노동자들의 파업은 2021년 최장기 파업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글로벌 식품제조업체인 프리토레이·나비스코·켈로그·베스킨라빈스 노동자 파업으로 이어졌다. 미국노동자들의 투쟁은 노조가 주도하는 교섭대표노조 인준투표나 파업 투쟁으로 제한되지 않고 자발적인 작업중지 투쟁, 비공인 파업으로도 확산했다. 캐스케이드 교정시설의 경우 동아프리카 지역 이주노동자들이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진행한 비공인 파업에 관련 노동조합이 연대하면서,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해당 파업의 적법성 인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파업의 달”이라고 불릴 정도로 파업 투쟁의 물결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프런티어사의 정보통신 노동자들, 시애틀의 목수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파업 투쟁을 주도했다. 잔 디러 공장 노동자 1만여명과 머시 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뉴욕에서는 뉴욕시 택시 면허제의 문제점으로 빚더미에 짓눌린 택시노동자들이 한 달이 넘는 기록적인 단식 투쟁·파업, 심지어 분신 항거를 벌인 끝에 승리를 쟁취했다. 파업의 물결은 제조업·공공부문과 같이 전통적인 부문뿐 아니라 서비스업·교육·문화·예술부문으로도 확대해 영화 및 TV 스태프 노동자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강사들, 콜럼비아 대학의 대학원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전개했다.
지난해 미국 노동운동이 보여준 놀라운 투쟁과 활력은 여러모로 우리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경제 침체와 고용 악화, 양극화 심화, 트럼프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의 득세, 인종 간 혹은 성별 간 내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악화한 사회적 균열과 갈등 등 노조운동을 둘러싼 환경은 미국과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드러난 생태·환경적 위기상황도 유사하다.
그럼에도 미국 노조운동은 지난 십수 년간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 인종·성별 등 노동자 내부의 차이를 차별과 배제로 활용하는 착취 양식에 대한 저항, 조합원을 제도권 정당의 ‘표밭’으로 전락시키는 보수정치에 맞선 투쟁을 끈질기게 이어 왔다. 그러한 투쟁의 성과로 미국은 노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68%로 1965년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우리의 노조운동은 어떠한 모습이었나. 이명박·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권하의 지난 시기는 가칭 노조운동의 ‘잃어버린 15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 양극화에 대한 진지한 대안도, 기업뿐만 아니라 노조에서도 배제된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도 발전시키지 못한 채 또다시 맞이한 새해가 조금도 희망적이지 않은 시절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