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동 변호사(금속노조법률원 경남사무소)

지난해 10월 초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서 여러 형사사건을 동시에 위임해 왔다. 조선소에서 있었던 일련의 조합활동에 대해 원청회사가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들이었다. 정리해고 관련 투쟁사건부터 시작해서 하청노동자 총궐기대회 등 202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 사이 있었던 조선하청지회의 거의 모든 굵직한 투쟁활동에 대해 꼼꼼히 기소가 된 상태였다.

논의를 통해 경험이 많은 선배 김두현 변호사가 주심을 맡아 항소심에 계류 중인 최초사건을 수행하고, 그 추이에 따라 후속사건을 대응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기록을 검토해 보니 투쟁의 동기나 전개양상 측면에서는 사건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포함된 죄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주거침입)이었다. 강력범죄를 연상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죄명이지만, 그 내용은 단지 조합 간부들이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원청회사의 허락 없이 조선소에 들어왔다는 것이 전부였다. 절반은 조합 간부들이 조선소에 출입한 행위만을 대상으로 기소한 사건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사용자는 노동 3권 행사의 직접 상대방이므로 사용자가 관리하는 사업장 내에서 더욱 폭넓게 조합활동이 인정되는 것이 상식인데, 조합활동을 위해 사업장에 출입했다는 이유로 기소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업장 출입행위은 노동 3권의 핵심인 사업장 내 노동조합 활동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다. 요구를 관철시킬 상대방이 사업장에 있는데, 사업장 출입부터 금지한다면, 조합활동의 목적인 근로조건에 대한 요구사항 관철은 불가능해진다. 헌법재판소가 집회 장소를 항의 대상에서 분리시키는 것을 금지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행사건의 1심 법원은 조합 간부의 조선소 출입행위만을 단독으로 기소한 사건에서조차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다. 회사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출입했고 가처분 소송을 통해 출입권을 얻을 수 있었는데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가처분 소송을 하려면 돈과 시간이 든다. 정리해고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최소한 몇 달은 일자리를 잃은 상태에서 최소 수백만원의 소송비용까지 지출해 가면서 견뎌야, 겨우 사업장 출입할 권한이 생긴다. 사업장에 출입하더라도 요구사항이 관철되기까지는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법률전문가들이나 떠올릴 보충성이라는 요건을 벼랑 끝에 내몰린 근로자가 준수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간통을 목적으로 상간자의 허락만 받고 주거에 침입하는 경우 상간자의 허락은 있었으므로, 상간자의 배우자가 허락하지 않았더라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법적 논리야 어떻게든 구성하더라도, 간통 목적으로 타인의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는 주거침입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면서도, 헌법상 권리실현을 위한 사업장 출입은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을 상식과 정의의 관점에서 옹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단결함으로써 협상력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조직이므로, 조합원들의 의사를 잘 집약하고 이끌어 갈 조합 간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조합 간부이지만, 조선소 내 종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원청의 허락 없이는 조합활동을 위한 출입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제대로 된 조합활동을 기획·실천하지 못하게 돼 조합할 권리 자체가 사실상 박탈될 수 있다.

결국 조합 간부들의 조선소 출입행위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단순히 출입행위가 주거의 평온을 얼마나 침해했는지에 대한 판단을 넘어서 앞으로의 옥포조선소 내 하청근로자들이 근로조건에 대한 의사를 표현할 권리 내지 노조할 권리의 중대한 제약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선배인 김두현 변호사가 수행한 선행사건에 대해 항소심 법원은 원심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하청노동자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줬다. 물론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한 상태다.

후속사건들의 공판들도 하나씩 진행되고 있다. 부디 남은 형사재판에서도 조합 간부의 출입이 하청근로자들의 기본권에 미치는 현실적 영향력을 고려한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이 선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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