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재벌 건설사가 시공하던 신축 아파트 외벽이 붕괴돼 6명의 하청노동자가 실종됐다. 시공사는 지난해 광주 철거 참사를 빚은 바로 그 현대산업개발이었다.
사고 다음날 아침 신문은 이 소식을 주요 지면에 실었지만 비중은 제각각이었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서울신문이 각각 1면 머리기사로 이 소식을 전했다.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한겨레는 1면에 두 번째 크기의 기사로 보도했다. 매일경제는 1면에 사진기사로만 다뤘다.
이번 외벽 붕괴사고를 낸 시공사가 지난해 철거 참사를 빚은 현대산업개발임을 제목에 직접 언급한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였다. 경향신문은 ‘광주, 그 건설사… 또 안전이 무너졌다’는 큰제목 아래 ‘현대산업개발 시공, 또 대형 사고’라는 작은 제목을 달아 현대산업개발의 안전 불감증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냈다. 한국일보도 1면에 두 번째 크기의 기사 제목을 ‘광주 아파트 공사 중 외벽 붕괴 … 작년 철거 참사와 같은 시공사(HDC현산)’라고 달았다. 한국일보는 이어진 2면에도 ‘학동 참사 재발방지법 통과된 날에 … 현대산업개발 때문에 또 대형 사고가’라는 제목의 별도 기사까지 썼다. 한국일보는 이 기사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아직도 공사현장에서 안전불감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모든 신문이 지난해 학동 철거 참사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이 이번에도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하느냐, 아니면 조선일보처럼 10면에 1단 기사로 보도하느냐는 많이 다르다. 그나마 조선일보는 10면에 ‘또 현대산업개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사실을 보도하긴 했다.
매일경제는 1면에 사진기사로 이 소식을 전하며 시공사가 어디인지 언급조차 안 했다. 매경은 31면(사회면)에 무려 23개 문단의 기사로 상세하게 전하면서도 지난해 참사를 낸 현대산업개발이 또 사고를 일으켰다는 내용은 맨 마지막 3개 문단에 와서야 보도했다.
왜 이토록 시공사 이름을 뒤로 숨겼을까. 이처럼 언론이 중대재해를 숨기거나 억지로 보도하는 바람에 같은 참사가 반복되는 건 아닐까. 광주 아파트 사고를 첫 보도한 지난 12일자 신문 6면에도 매경은 ‘중대재해·건설안전 겹규제에 산업계 악소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기업들이 과잉규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사를 보는 실종자 가족들 심정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는가.
한편 광주 서구의원들은 이번에도 현장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 앞에서 빈축을 샀다. 구의원 10여명은 지난 12일 차량 2대에 나눠 타고 광주 서구 화정동 아파트 사고 현장을 찾았다. 여기서 몇몇 의원이 명함을 돌리거나 식사는 하셨냐고 물었다가 실종자 가족에게 “말 걸지 마시라” “지금 밥이 넘어가냐”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해 광주 동구 학동 참사 때도 구의원들이 현장에 몰려와 조화 위치를 옮겨 가며 사진을 찍다가 유족과 시민들에게 빈축을 샀다. 사회적 참사에 감수성 없기로는 언론과 정치인이 으뜸이다. 어쩜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를 수가 있을까.
언론과 정치인 다음으로 재벌 오너도 세상 물정 모르긴 마찬가지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멸공’ 발언으로 지난 10일 신세계 주가가 하루 만에 6.8% 하락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내게 멸공은 현실, 정치 운운 말라’며 정 부회장을 도왔고, 서울신문은 ‘스벅(스타벅스) 매출 2조 훌쩍 … 오너 리스크 없다’는 제목으로 적극 엄호했다. 정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난 공산주의가 싫다”고 올린 게 지난해 11월23일이지만 ‘멸공’ 논란으로 확대한 건 올해 초인데도, 지난해 1년 전체 매출 증가와 비교하며 ‘오너 리스크 없다’고 용감하게 제목 다는 언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