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노동조합이 전년 사업을 평가하고 새해 사업계획을 잡는 시기다.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 한 해 시험만능 능력주의 공정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웠다. 지난해 초 대의원대회에서 사업기조를 잡고 두 번의 전국적 총파업을 성사했다.
비정규직 신분을 벗어나려는 처절한 투쟁을 오로지 공정 프레임에 가둬 무관심과 비난으로 일관하는 사회를 그대로 둔다면,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도 비정규직 신분 사회를 물려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인식이었다. 능력주의·시험만능의 비뚤어진 공정프레임을 깨고자 했다.
지금은 비뚤어진 공정담론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연구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행정실무사·구 육성회 직종이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시정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공무원과 학교비정규직은 입직경로와 책임·권한 등이 달라 차별적 처우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했다. 연이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현행법에 근거한 법리 다툼으로는 차별해소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학교비정규직 공정성 연구 프로젝트가 제안된 이유다. 학교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과 능력주의 공정프레임에 대한 이론적 비판입장을 모으고 있다. 조합원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불공정 사례들을 수기·시 응모전으로 제출했고, 전문가들과 함께 ‘공정담론 조합원 집담회’를 두 차례 열었다. 연구 결과들을 모아 곧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거대 양당 대선후보들의 입에서도 매일 ‘공정’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20~30대 중간층 표심을 잡는 데 혈안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공정’은 우리 비정규직의 마음을 담지 못한다. 도리어 능력주의 공정이데올로기 확산에 유력 대선후보들이 앞장서는 모양새다. 한 후보는 공공연히 능력주의를 주창하고, 다른 후보는 마이클 샌들 교수와 대담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지만 여전히 공정한 경쟁의 룰만 강조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공정수당으로 덮어 버리고, 자산 불평등을 얘기하면서 부동산 보유세는 깎자고 한다. 다른 듯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도긴개긴이다. 문제는 불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이라고 외쳐도 저들에게는 닿지 않는다.
해외 석학이 ‘공정하다는 착각’의 위험을 알리고, ‘한국의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 지난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의 능력주의 공정이데올로기는 견고하다. 12년 제도교육을 받으며 시험 결과에 따른 줄세우기가 몸에 배고, 사회에 나와서도 학벌·출신 집안이라는 다른 출발선이 기다린다. 가장 공정하다는 시험에 목을 매지만 오징어 게임과 각자도생은 일상을 지배한다.
시험을 볼 자격이 안 되거나, 끝내 통과하지 못하면 능력 없는 자가 된다. 게다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과정과 국민건강보험 상담센터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이 그러했다. ‘교육공무직’을 법에 명시하자는 법제화에 발끈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1만명을 넘었다. 조합원들은 학교비정규직 투쟁과 파업 뉴스에 달린 댓글은 보지 않는다. ‘시험도 안 보고 들어와 떼쓰기 한다’는 투 일색이라 괜히 상처만 받는다고 한다.
교육공무직 조리종사자 중에 경력채용 시험을 거쳐 공무원조리사가 되는 지역이 있다. 사회, 위생 관련 법규 과목 4지선다형 문제를 40분에 풀고 나면 누구는 공무원이 되고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남는다. 그리고 신분이 바뀐다. 임금은 월 100만~200만원이 올라가고, 방학 중 비근무자가 상시근무자로 전환해 연간임금은 더 올라간다. 민간 유사경력·군경력 등도 다 인정받고 퇴직 후 연금을 받는다. 청소·설거지 업무도 빠질 명분이 생긴다. 하던 일은 그대로인데 사회과목 객관식 한 문제 더 맞췄다고 이렇게 신분이 바뀌는 게 공정한 건가?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조리 관련과를 졸업하고 경력경쟁으로 입직하는 사회초년생 조리사도 있다. 이들은 고용이 안정된 학교 같은 일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한다. 조리종사자 1인당 식수인원이 많아 노동강도가 높고, 산재위험이 크니 정원이 늘어나길 바란다. 교육공무직 법제화로 정원과 인사복무규정이 합리적으로 정돈되길 바란다.
우리 사회 공정성 담론은 한 쪽에 치우쳐져 있다. 부모의 수저계급을 무상으로 승계한 상위 10%와 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직장에 안착한 정규직 청년들의 목소리가 전부인 양 과대포장돼 있다. 교사나 공무원이 될 수 없는, 또는 그럴 생각도 없는 청년들은 교육공무직 같은 일자리가 많아지고 더 좋은 일자리가 되길 바란다.
시험을 통해 정해진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한가?
능력주의는 얼마만큼의 불평등이 공정한 불평등인가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주목받은 돌봄·급식·청소·의료 등 필수노동의 가치를 시험만능 능력주의는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판을 보고 포기할 것인가?
공정담론 집담회 발제문에서 다시 힘을 얻는다.
“제도교육을 비롯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입력된 능력주의 관념의 대부분은 바로 ‘시험’을 통해 ‘학교’에서 이뤄진다. 학교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을 가로막는 능력주의가 바로 그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아이러니. 바로 그 때문에 더더욱 학교비정규직노조의 목소리는 중요하고 의미가 크다.”
필수노동자들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플랫폼 노동자들이 진짜 불공정한 불평등에 맞서 통 큰 투쟁을 준비하자고 다시 사업계획을 짠다. 전환기는 말이 아니라 노동자의 투쟁으로 만들어 가는 거니까.
“수업은 온라인으로 할 수 있지만, 급식과 돌봄은 온라인으로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