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하청업체 소속 30대 노동자가 전기 연결 작업을 하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사건과 관련해 ‘원청’인 한전의 안전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경영책임자인 한전 ‘사장’은 이달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지 않아 처벌이 쉽지 않겠지만 ‘도급인’으로서 안전보건총괄책임자는 강화된 양형기준을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청노동자, 면장갑 끼고 홀로 작업에 감전
한전 안전책임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가능성
5일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5일 여주시의 한 신축 오피스텔 인근 전봇대에서 전기 연결 작업을 하던 한전 하청업체 노동자 김아무개(38)씨가 2만2천볼트의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김씨는 의식을 잃은 채 30여분간 전봇대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됐지만,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어 사고 19일 만인 같은달 24일 세상을 떠났다.
사고 현장에서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의 안전규정상 2인1조 작업을 해야 하는데도 김씨는 홀로 현장에 투입됐다. 고압 전기작업시 이용하는 ‘활선차(고소절연 작업차)’가 아닌 일반 트럭을 타고 작업했고, 장갑도 절연장갑이 아닌 면장갑을 착용했다.
노동부 성남지청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인 한국전력 지사장과 하청 현장소장 등을 절연용 보호구 미지급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경기도 여주경찰서 관계자도 이날 “현재 관계자들을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한전 안전책임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주목받는다. 노동부가 한전을 원청에 해당하는 ‘도급인’으로 보고 있어 안전책임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안전보건법 64조는 도급인의 산재예방조치 의무를 정하고 있고, 같은법 38조에는 안전조치 의무 조항을 두고 있다. 한전 안전책임자가 산재 예방조치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씨가 작업한 전봇대도 ‘한전의 사업장’으로 볼 여지가 크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11조에 따르면 ‘공중 전선에 가까운 장소로서 시설물의 설치·해체·점검 및 수리 등의 작업을 할 때 감전의 위험이 있는 장소’는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 해당한다. 한전이 관리하는 전봇대에서 사고가 발생한 만큼 관련 법률을 위반한 사정이 수사를 통해 밝혀지면 안전책임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실제 하청노동자의 감전 사고와 관련해 한전 책임자를 처벌한 사례는 있다. 2017년 발생한 한전 충북본부 하청노동자의 감전사와 관련해 안전책임자인 충북본부장이 재판에 넘겨져 2019년 9월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한전이 종합적인 안전관리를 하지 않은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봤다.
지난해 대법원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과실치사상 범죄의 ‘양형기준’이 강화돼 한전 안전책임자 처벌은 엄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1월 주의의무 또는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한 경우 가중영역을 기존 ‘10개월~3년6개월’에서 ‘2~5년’으로 높였다.
“수사 통해 책임범위 정해질 듯”
하지만 한전의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지우기는 현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법조계는 예상했다. 현행법상 도급인의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정하는 세부 항목을 위반했을 때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장 실무자가 아닌 경영책임자가 안전관리에 대한 세부사항까지 알고 이행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그동안 처벌을 피해 왔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이전에도 유사한 사건이 많이 있었으므로, 구체적인 수사를 통해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밝혀내야 한다”며 “경영책임자가 안전의무를 현장책임자에게 대개 위임하고 있어 이번 사건도 구체적인 수사를 통해 책임범위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산업안전보건법은 ‘허들’이 많아 현실적으로 대표이사의 고의성이 인정돼 처벌받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유사한 사건에서 원청 경영책임자의 처벌 가능성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씨 사고와 같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해 ‘중대산업재해’에 해당되면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한전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 경영책임자가 바로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한전은 최근 5년간 국내 공기업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기관이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3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