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9일 ‘플랫폼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지침(안)’을 포함한 법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입법지침(Directive)’이란 EU 회원국들이 함께 달성해야 할 입법 목적을 제시하는 것이다. 입법지침이 통과하면 EU 회원국들은 지침에 담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국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번 입법지침(안)을 발표하면서 EU 집행위원회는 다음의 세 가지가 플랫폼노동 보호를 위한 핵심적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지침(안)은 고용상 지위의 오분류 문제 해결을 플랫폼노동 보호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내세웠다. 단지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자영인’으로 취급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랫폼기업과 노동자 간의 고용관계를 추정하는 규정을 제시했다. 즉 플랫폼기업이 다음의 5가지 지표 중 2개 이상에 해당할 경우 ‘사용자’로 추정된다. 5가지 지표는 플랫폼기업이 △노동자가 받는 보수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보수의 상한선을 설정 △노동자가 일할 때 복장·두발·유니폼 등 외관, 고객에 대한 응대 방식, 업무수행에 관한 규칙을 따르도록 하기 △전자적 방식 등을 통해 노동자의 업무 수행을 감독하거나 일의 결과를 평가 △일하는 시간 혹은 일하지 않는 시간을 노동자가 선택할 자유를 제한, 일감(과업)을 수락하거나 수락하지 않을 자유를 제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해 노무제공을 하도록 할 자유를 제한하는 등 노동자가 노무제공을 스스로 조직할 자유를 사실상 제한하거나 이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노동자가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을 독자적으로 개척하거나 플랫폼이 아닌 다른 제3자를 위해 일할 가능성을 사실상 제한하는 경우다. 그리고 플랫폼기업이 고용관계의 추정을 뒤집으려면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플랫폼기업이 부담하도록 했다.
둘째, 지침(안)은 알고리즘·인공지능 등을 통해 자동화된 통제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일감 배정, 보수, 노동안전, 노동시간, 제재, 계정 정지나 차단 등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인공지능 등의 결정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 노동자들에 대한 모니터링·감독·평점 등에 활용된 알고리즘의 주요 매개변수와 관련한 정보를 플랫폼기업이 노동자와 노동자대표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셋째, EU 집행위원회는 지침(안)과 함께 ‘1인 자영인의 단체협약권 보장을 위한 가이드라인(안)’도 발표했다. 이는 설령 노동법상 노동자라는 판단을 받지 못하더라도, 교섭력이 약한 1인 자영인들도 스스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이들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을 보호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EU의 개선방안은 그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하다.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해 노동법 밖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첫째 고용관계의 추정 제도를 통한 오분류 문제 해결과 플랫폼기업의 사용자책임 인정, 둘째 알고리즘·인공지능 등 전자적 통제에 대한 노동자와 노동자대표의 권리 보장, 셋째 법상 근로자인지 따지지 않고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으로서의 단체교섭권 보장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점이다.
이번에 EU가 제시한 해결책은 문재인 정부가 밀고 있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대책’과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이른바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은 근로자 오분류 문제에 대해 실질적 대책이 없고, 알고리즘을 통한 통제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립서비스 이상의 내용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안은 지난해 10만명 국민발의로 청원됐지만 정권 말기에 이르기까지도 논의 테이블에조차 올리지 않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제발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노동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시대착오적 주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플랫폼노동 보호에 관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직시하길 바란다. 그리고 세계적 흐름에 뒤떨어진 플랫폼종사자보호법안을 폐기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실효성 있게 적용하기 위한 노력에 함께하기를 촉구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