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하는 듯 변하지 않고, 나아지는 듯해서 둘러보면 제 자리다. 그럼에도 세상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변해 간다. 의심의 여지도 없던 어제의 당위가 오늘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되기도 한다.
‘활동가도 노동자냐.’ 며칠 뒤면 벌써 21세기의 스물두 번째 해를 맞이하는데, 아직도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이야. 생각해 보면 새삼스럽지도 않다. 격렬하게 드러내진 못했으나 활동가사회 어디에나 존재했던 오랜 논쟁의 주제였지만, 결론은 그냥저냥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을 뿐 제대로 정리된 의제가 아니었다.
오랜 활동 기간을 거쳐 지금은 각종 노동사회단체의 대표나 관리자 지위에 있는 지인들이 꽤 있다. 같은 활동가인데 상근자들에게 사장 취급 받는 것이 힘들다는 토로를 가끔 듣는다. 내가 보기엔 문제의 시작이 여기에 있다. 내 답변은 늘 같다. “당신이 사장 맞으니까 제발 사장이라는 의식을 가지라고!”
나도 사장이다. 노동법률지원센터라는 기관의 센터장이자 별도 등록한 노무법인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니 법적으로도 영락없는 사장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센터에 법률지원을 요청하는 수많은 노동자들보다 내 노동자들이 훨씬 더 소중하다. 종종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노동자들의 격한 상담을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받아내고 있는 내 노동자들이 늘 안쓰럽다. 민주노총의 다른 지역본부 법률센터, 노동상담소들과는 달리 우리는 인건비 일체를 스스로 벌어야 해서 일상적인 임금체불 우려에다가 그게 다 내 무능함인 것 같아 항상 구성원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산다. 그래서 나는 사장이다. 활동가나 상근자라 부르건 노동자나 직원이라 부르건 구성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대표가 져야 한다. 그것이 같은 활동가라도 조직 내에서 대표라는 역할분담을 맡은 자의 책임이다. 쓰고 보니 너무 당연한 얘기다. 그렇지만 소위 ‘주인 없는 기업’의 노사갈등 해결이 더 어려운 원인은 대개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얼마 전 사회단체·협동조합·비영리단체 대표들을 대상으로 노동법교육을 했다. 노동자 교육만 하다가 사용자 교육을 하니 개인적으로는 신선했다. 사실 노동자보다 사용자가 필수적으로 노동법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만 보더라도 대다수 조문의 주어는 사용자다. 사용자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하고 있는 법이니 어떤 의미에서는 사용자를 위한 법이다. 현행 노동법이 올바른 노동권과 노사관계를 제대로 담고 있는가라는 판단은 일단 차치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라는 점은 인정하자. 근로계약서도 안 쓰면서 근로계약서 미작성 사업장 고발을 하는, 최저임금도 안 주면서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하는 노동단체가 있다면 말이 되겠는가.
활동가도 노동자냐는 질문 속에는 오히려 활동가 ‘선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고 본다. 그것이 노동단체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그 조직의 정체성이자 근원이 되는 노동관이 근본부터 틀렸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사회단체라도 그 조직에서 받는 보수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고용관계가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노사관계도 있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적 지향이 같더라도 고용관계와 노사관계에서 노와 사의 입장과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상호 신뢰와 배려에 기초한 ‘좋은 것이 좋은 것’은 없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고용관계에서는 노동법에 기초한 기본적인 제도를 갖추고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다 가족 같고 동등한 관계라는 말은 어떤 조직이건 감히 대표나 관리자가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그런 말이 신입 구성원 입에서 나와야 진짜 동등한 관계의 조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예를 들어 노동조합에 채용된 노동자에게 그 노동조합 조합원 평균 수준의 임금도 못 주면서 무슨 가족이고 동지이겠는가. 한편, 이윤 창출을 위한 기업체도 아니고 재정여력이야 당연히 없을 테니 그렇다면 각종 상황과 조건을 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상근자들의 노동조건과 인사노무제도를 노사 간 협의 속에서 함께 결정하면 된다.
나는 20여년 전 활동비라는 이름의 10만원을 월급으로 받으면서 상근활동을 시작했고 민주노총 사무총국 성원이던 시절에는 민주노총 사무총국 노동조합의 조합원이고 싶었던, 이제는 법적으로 사장이 된 노동자이자 활동가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이지만 우리 노동·사회단체들이 사람을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의 삶과 일상을 위한 정상적인 직장이기도 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굴러가는 조직은 단언컨대 미래가 없다. 역경 속 투사 같은 활동가는 대중들에게 경외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기는 어렵다. 활동가의 모습이 바뀌는 것부터가 어쩌면 노동·사회운동이 대중성을 얻는 시작이지 않을까. 평생을 진보의 가치 실현을 위해 살아왔더라도 지금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는 지금 보수다.
각고의 노력과 성과도 다 주체들의 이름으로 돌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바꿔 가는 일을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활동가들의 새해 행복과 건투를 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