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OTT 웨이브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오리지널 콘텐츠다. 지난 11월에 출시된 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상청>은 끝내주는 정치 블랙코미디다. 빠르고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휴대폰으로 감상하기 적합한 30분짜리 12부작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 기시감 돋는 깨알 같은 설정에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지지만, 정치혐오와 냉소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의 본질을 사유케 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다.
1. 기시감 돋는 정치 풍자 코미디
드라마는 현직 장관 남편의 납치를 둘러싼 소동극을 보여준다. 1주일간 휘몰아치는 소동극의 와중에 시청자는 ‘정치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정치와 어떤 정치인을 꿈꾸는지’ 음미하게 된다.
드라마는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 지형을 정확하게 그린다. 여기서 정치는 성정치 이슈를 포함한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국 정치의 발목을 잡는 북한 변수도 빠질 수 없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진보 정권의 임기가 6개월 남은 상황, 남북교류를 최대 치적으로 삼고 싶은 정권, 운동권 출신의 청와대 수석, 남성 장관의 성추문으로 생긴 공석. 병역·탈세 등 문제를 하나씩 접으니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장관 후보들, 코로나19 방역의 위력, 태극기 집회를 이끄는 목사를 영입하는 보수당, ‘성차별은 없다’며 반페미 이슈몰이로 2030 남성 표를 얻으려는 보수당의 신진 세력. 세상 모든 곳에 토를 다는 진보지식인, 가짜뉴스를 재생산하는 유튜버 등등. 아예 실명을 거론하는 생생함에 현실 세계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북한에 대한 묘사도 과감하다. 경제협력을 해야 하는 상대이지만, 언제든 미사일과 무지막지한 성명서를 날려 주는 껄끄러운 존재다. 여기에 ‘메타버스’라는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한 맛보기까지 흥미롭다.
어쩌면 <이상청>의 세계관 자체가 또 하나의 평행우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예단은 마시라. <이상청>은 현실에 대한 충실한 모사와 ‘모두 까기’식 냉소로 뭔가 대단한 정치 풍자를 수행한다고 착각하는 속 빈 드라마가 아니다. 현실에 대한 공들인 모사는 정치에 대한 이해와 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2. 공무원이라는 전문직 사회
드라마는 문화체육부 장관실을 중심으로 공무원 사회를 촘촘히 그린다. 전문직 오피스물이라 할 만큼, 직업의 세계가 실감 난다. 어쩌면 드라마 <보좌관>의 시트콤 버전 같다.
공무원 사회에는 ‘늘공’과 ‘어공’이 있다. 안희정의 성범죄 사건 후 널리 알려진 공무원 은어다. ‘늘공’은 ‘늘 공무원’의 준말로, 공무원 시험을 거쳐 들어와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다. 반면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의 준말이다. 선출직이나 보좌관·비서관처럼 선거나 인맥· 면접을 통해 채용되고 쉽게 퇴직한다. 문화체육부 장관실에는 주로 최수종 실장이나 신원희 대변인 같은 ‘늘공’이 존재하지만, 이정은 장관과 김수진 비서는 ‘어공’이다. <보좌관>을 비롯한 정치드라마에서 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공’이다. ‘늘공’은 국가기관에서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지만, 거의 조명된 적이 없다. 그저 관료적인 조직의 일원으로 납작하게 그려질 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이키루>는 관료적인 공무원 사회의 폐해를 리얼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시스템 안에서 인간미와 성취를 담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개인의 노력을 비춘다. 그저 자리를 지킬 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직장으로 여겼던 시청의 공무원인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작은 공원 하나를 만드는 기적을 이룬다.
‘늘공’은 그런 존재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지만, 어떤 순간에도 일이 돌아가게끔 묵묵히 일하는 그들의 손끝에서 ‘이야기 할머니’ 같은 의미 있는 사업이 사라질 수도 있고, 체수처(체육문화계 범죄 수사 전담처) 같은 기관이 생겨날 수도 있다. 드라마는 예산을 쥐어짜려 동분서주하던 ‘늘공’의 입으로 “정치란 몫을 나누는 일, 오늘 나는 정치를 했다”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들려준다.
3. 비루한 남자와 늠름한 여자
드라마는 성정치학적으로 앞서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여성 장관 이정은은 서도원 보좌관에게 은근한 하대와 무시를 당한다. 심지어 4선 의원 차정원은 극우 목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기도 한다. 헤어진 여자 친구를 스토킹하는 남자는 범죄라는 생각조차 없다.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젊은 여성 조리나는 쉽게 협박이나 성매매 같은 착취에 노출된다. 이런 X같은 현실의 진창에서 드라마는 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활력을 들려준다. 차정원이 펼치는 화려한 응징과 야심은 얼마나 통쾌한가. 이정은에 대해 견제의 날을 세우던 차정원은 “쉽게 뭘 얻는 여자는 대한민국에 없다”고 말하며, 이정은과 함께 사이즈를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모든 소동이 끝난 뒤 드라마는 조리나가 진정으로 인문학을 공부해 차정원의 유식한 말상대로 거듭나는 것을 보여준다. 여느 작품이었다면 조리나는 남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처참하게 버려지거나 결말에서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사라지는 존재로 방치됐을 것이다.
드라마의 핵심사건인 납치극은 결국 자신보다 잘나가는 아내를 견디지 못하는 ‘진보한남’의 비루함이 빚은 참사로 드러난다. 늠름한 이정은과 지질한 남편 김성남의 대비는 정성주 극본의 드라마 <아줌마>(2000)를 연상시킨다. 김성남과 <아줌마> 주인공의 남편 장진구는 영혼의 단짝 같다.
이정은은 무결한 영웅이 아니다. 남편이 윤색한 자신의 과거사를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는가 하면, 마지막엔 차정원과 진실을 파묻는 뒷거래를 하지 않던가. 그는 결벽적이지 않다.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나고, 운동선수답게 ‘막판 득점’에 강하다. 하지만 그는 권모술수에 강한 여느 정치인들과 다르다. 자기 곁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IT기업 수장인 하윤주를 군복무 시절에 지킨 인연으로 도움을 받는다. 국회의원 임기 동안 육상 꿈나무 민정이를 지켰다. 피해자를 전시하는 굴욕적인 쇼 대신 자신을 까 보이는 승부수를 던졌고, 묵묵히 일해 오다 날벼락을 맞은 최수종 실장의 편에 섰다. 이정은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강단을 보이는데,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높은 기개와 자질과 뚝심과 야망을 정치 고수 차정원과 김수진 비서만 알아 본다. 이정은은 고작 6개월의 임기 동안 체수처를 만들고, 더 큰 포부를 품는다.
당신은 어떤 정치와 정치인을 원하는가. 현실에 이정은 같은 정치인이 있다면 그를 대선 후보로 밀고 싶다. 추악함과 한심함의 대결장 같은 ‘비호감 대선’을 맞아, 정치혐오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런 드라마라도 봐 줘야 한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