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내가 만난 A씨는 2008년에 한 방송사 파견근로자로 근무를 시작했다. A씨는 매일 아침 9시 회사에 출근해 회사 내 마련된 본인의 자리에서 회사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A씨의 업무는 금전출납 및 회계업무로 회사에서 상시 필요로 하는 업무였으므로 회사는 A씨를 계속 사용하고 싶었고, A씨 역시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A씨는 계속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계약서에는 프리랜서 계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프리랜서’ 단어를 찾아봤다.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돼 있었다. 예문으로는 ‘그는 방속국과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문장이 나왔다.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롭게”가 프리랜서의 핵심적인 의미다. 그렇다면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A씨는 계약서와 같이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롭게” 일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A씨는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종전 파견근로계약 당시와 조금도 다름없는 방법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숙련도가 높아짐에 따라 오히려 업무의 내용이 좀 더 많아지고 다양해졌다는 점뿐이었다. A씨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했다. 회사 내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직접 또는 유선으로 전달되는 업무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 금전출납 및 회계처리라는 업무는 그 특성상 A씨가 독자적으로 결정해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도무지 있을 수가 없었다. 월급 역시 항상 같은 금액을 똑같이 받았다. 처리한 일이 많다고 더 많이 받는 일도, 그날 처리한 일이 적다고 더 적게 받는 일도 없었다. 매일매일 출근해 정해진 사무실 내 자리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A씨가 자유롭게 다른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음도 분명했다. 그런데 A씨의 근로조건은 확연히 달라졌다. 프리랜서는 근로자가 아니라면서 매년 발생하는 연차휴가를 주지 않았고, 산전후휴가도 보장받지 못했다. 근로자가 아니므로 퇴직금도 없다고 했다.

근로자 파견 기간은 원칙적으로 2년을 초과할 수 없고, 2년을 초과해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사용자는 해당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6조의2 1항3호).

사용자가 A씨를 계속 사용하고 싶다면, 법률에 따라 A씨를 직접고용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피하기 위해 사용자는 갑자기 A씨를 프리랜서(사용자)로 둔갑시켜 버렸다. A씨는 단지 계속 회사에 남아 일하고 싶어 프리랜서 계약에 사인했다. 그렇게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사용자)가 된 A씨는 파견근로자 시절의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얼마 전, 한 대선 후보자의 이런 말을 들었다. “사용자는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을 못 하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조건에서 일할 의사가 있는 분들도 결국 최저임금 때문에 일을 못 하니 이런 비현실적인 제도들을 철폐해 나가가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미만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생계가 급한 누군가는 당장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라도 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전혀 수평적 관계가 아니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미만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자유의사가 아니다. 그는 최저임금 미만으로 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미만으로‘라도’ 일하고 싶은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가 나서 법으로 최저임금제도를 만들어 최소한의 국민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최저임금제도다. 이는 비단 최저임금 문제만이 아니다. 노동자 사용자 사이의 문제는 모두 그렇다.

아마도 A씨 역시 당장에 회사에서 잘리는 것보다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해도 그렇게‘라도’ 회사에 남고 싶었을 것이다. 회사는 파견법을 어겨서라도 일을 시키고 싶고, A씨는 근로기준법상 보호 밖에 놓인다고 해도 당장에 계속 일할 자리가 필요했을 수 있다. 이는 A씨의 절박한 상황, 약자라는 상황을 악용한 사용자의 꼼수이지 결코 ‘합의’가 아니다. 겉으로만 평등해 보이는 ‘합의’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이 존재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