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근무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청소대행업체에서 근골격계 질환 징후가 있는 노동자를 채용 취소하는 것이 문제가 없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전화를 건 이는 “노무사들마다 각기 답변이 다르니, 센터에 계신 다른 노무사님들 의견도 꼭 물어 봐 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처음엔 굉장히 의아했고, 그 다음엔 황당함이 밀려들었다. 문제가 있었다. 질문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업이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에 관해 몰두했다.
청소대행업체가 채용 공고를 띄우면서 자격요건으로 “신체 건강한 자, 특히 과거 근골격계 질환 및 징후가 없을 것”을 당당히 내거는 상상을 해 봤다. 혹은 구직자들에게 그간 요양급여 내역서를 떼 오라고 요구할 수도 있겠다. 그 청소대행업체에서는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 건수를 줄여 보자는 생각에서 그 질문을 했다던데,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이건 내 문제이기도 하잖아.
‘저희가 채용할 노무사는 연장근로를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마음을 다친 노동자들을 상담하기 때문에 정신 또한 건강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사무실에서는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건강한 사람을 채용하겠습니다’라는 채용공고를 걸고서, 면접 질문에서 “노무사님은 혹시 질병이 있나요? 정신과를 다니신 적은 없겠죠?”라고 묻는다면, 나는 머뭇머뭇 “저는 올해 암 수술을 받았고, 아마 스트레스에 취약한 신체 조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올해 초에 정신과도 다녀서 우울증 에피소드 진단을 받았어요”라고 답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당연할 수 있다고? 내가 구직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왜 나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지? 내가 문제인 건가?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에서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을 이유로 고용 등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참고로 서울고법에서는 신장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내버스 운전기사 채용을 거부한 것은 부당해고라 판정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근로자가 치료와 직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해 줄 의무가 회사에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인용된 사례로, 아직 우리나라는 차별금지사유를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있지 않다.
또한 국가인권위는 ‘병력 차별’을 “현재 정상적인 직업 생활이나 일상생활이 가능한데도 과거 병 이력 또는 현재 질병에 대한 잘못된 편견 등을 이유로 고용 등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
최근 직장내 괴롭힘 교육과정에서 만났던 인권활동가 류은숙 선생님은 ‘피해의 재구성’을 이야기하며, 피해자의 정치적 주체 되기를 강조했다. 나의 고통이 나만의 고통이 아닌, 보편적 공동의 문제라는 인식.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성장할 수 있고, 더 이상 피해자에게만 고통이 머물지 않는다고. 물론 이는 주변(환경)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동반돼야 효과를 발휘한다.
문제로 공론화된 행위가 직장내 괴롭힘인지 아닌지, 그 성립 여부에 집중해 법적 테두리 안에서만 논의하게 된다면, 단순히 가해자(라고 지목되는 자)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만이 남는다. 문제적 상황이 도래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 일터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는가? 곁에 있는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가해 행위자에게 “선을 넘으신 것 같다”고 말해 줄 수 있었다면? 나 또한 나의 일터에서 부적절한 발언이 오고 갈 때, 그 자리에서 제동을 거는 사람이고 싶다.
나의 고통이 나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나아갈 때, 나는 더 이상 고립되지 않는다. 나의 곁을 내주는 연대의 주체가 된다. 그저께는 상담 예약 없이 불쑥 센터로 찾아온 외국인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 그가 “이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소설가 김초엽은 “결국 대부분의 변화는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자신의 약자성은 물론 자신이 지닌 권력까지 인지하는 것, 내가 차별당하기도 하지만 차별하는 위치이기도 하다는 것, 그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소설 쓰기로 이어간다”고 말했다.
나는 나의 일상, 일터를 어떻게 꾸려 가고 싶은가? 새해 다짐들을 하는 연말, 곁을 내준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