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1천건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뇌출혈이 발병한 우편집배원이 법원에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이 집배원은 6개월 동안 우편물 10만건 이상을 배달했고, 주당 평균 50시간 넘게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반효림 판사)은 집배원 A씨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가 소송을 낸 지 1년3개월 만이다. 인사혁신처의 항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배달물량 전국 상위 33% 우체국 근무
산비탈 지역 배달하며 여러 차례 부상
A씨는 2005년 창원우체국에 상시계약집배원으로 입사한 뒤 2014년 우정서기보(집배원)로 임용돼 14년5개월간 근무했다. 그러던 중 2019년 11월29일 반차를 쓰고 동료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즉각 병원으로 이송돼 ‘자발성 뇌실질내출혈’ 진단을 받았다.
A씨의 업무량은 과중했다. 2019년 6월부터 뇌출혈을 일으키기 전까지 6개월 동안 우편물과 소포 총 10만7천건을 배달했다. 특히 뇌출혈 직전 주에는 하루 평균 1천건 이상의 우편물을 배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창원우체국은 다른 우체국보다 배달 물량이 많았다. 고용노동부가 2018년 실시한 ‘집배원 노동강도 설문조사 및 노동시간 실태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창원우체국의 초과근로와 집배부하량은 전국 우체국 중 상위 33.3%에 해당했다.
그러다 보니 A씨의 하루 일정은 빡빡했다. 매일 오전 6시50분에서 오전 7시30분 사이에 출근해 우편물을 분류한 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우편물을 배달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사무실에서는 미배달 물량을 정리하고 반송 우편물을 분류했다. 부가 업무로 택배 배송까지 맡았다.
A씨가 담당한 구역은 주로 산비탈에 있는 다세대·단독주택, 전통시장이었다. 이면도로가 많고, 계단으로 배달해야 하는 주택들이 다수였다. 이 지역을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다 2017년 6월 빗물에 넘어져 계단 모서리에 대퇴근이 부딪히는 상해를 입었다. 이듬해 7월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보름간 병가를 사용하기도 했다. 2019년 5월에는 허리 통증으로 병가를 사용했고, 같은해 9월에는 오토바이 머플러를 다리로 지탱하다 화상을 입었다.
그러던 중 뇌출혈을 일으킨 A씨는 인사혁신처에 공무상요양신청을 했지만, 업무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불승인 결정이 내려졌다. A씨는 인사혁신처의 처분에 불복해 지난해 9월 소송을 냈다.
법원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 기능 저하”
집배원측 “업무부담 가중요인 고려한 판결”
법원은 A씨의 뇌출혈이 공무상 재해라며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는 이미 장기간 계속해 과중한 집배원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만성 과로로 인해 뇌혈관 조절기능이 저하된 상태였다”며 “만성 과로가 음주와 겹쳐 뇌출혈을 유발했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A씨의 노동강도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A씨는 뇌출혈 발병 전 3년간 1주 평균 56시간을, 12주간 1주 평균 50시간을, 4주간 1주 평균 53시간을 근무해 만성적인 과로가 누적돼 있던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며 “집배구역의 위치와 배달장소의 구조, 환경적 요인을 살펴보면 집배원 업무는 A씨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과중한 부담을 줬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를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집배원의 노동강도와 근무환경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비록 원고가 반차를 내고 동료들과 술을 마신 상태에서 뇌출혈이 발병됐지만, 육체적 노동강도가 높은 집배원의 특성을 근거로 공무상 재해가 인정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