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공식 공인노무사(이팝노동법률사무소)

#사례1 이상균(가명)씨는 반도체소재 장비업체의 기술서비스파트에서 일한다. 이씨가 일하는 업체의 노동자는 50명 내외다. 그의 일터에는 아직 노조가 없다. 이상균씨의 기술서비스 부서 특성상 일이 터지면 (기계가 고장 나거나 정기점검·돌발점검의 경우) 며칠 또는 길게는 몇 주 동안 연장·야간·휴일근무로 정신없이 바쁘게 업무가 돌아간다. 그러다가도 업무가 한가해지는 때가 있다.

회사는 유연근무제 도입을 몇 달 전부터 언급하더니 연장근로에 대해 가산임금 지급을 사실상 회피하는 것과 다름 없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단위기간이 6개월 이상인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면 사용자와 근로자대표가 서면합의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근로자대표와 사용자가 탄력적 근로시간 도입에 합의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상균씨에게는 애초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다.

#사례2 조영대(가명)씨는 동물의약품을 취급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회사 규모는 10명 내외다. 조씨는 일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여름휴가 외에 따로 휴가를 가 본 적이 없다. 먼저 입사한 동료들에게 물어 보니 달력의 빨간 날(공휴일)을 쉬면 그대로 연차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회사에 물어 보니 근로기준법에 근거해서 특정휴일(공휴일)을 연차휴가와 대체하게끔 근로자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해 휴가관리에 적용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영대씨는 ‘연차대체 서면합의’를 한 근로자대표가 누구인지, 그러한 서면합의 제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연차대체 서면합의서를 보여 달라고 겨우겨우 요구해 확인해 보니 그 합의서에 서명한 근로자대표는 1년 전에 퇴사한 영업부 직원이었다. 조씨는 사용가능일이 ‘0’인 본인의 연차대장을 확인하면서 누가 그 사람을 근로자대표로 뽑았는지도, 기존 근로자대표가 퇴직하고 새 근로자대표를 뽑았는지 안 뽑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답답하다.

위 사례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 회사 근로자대표는 어디에 숨어 있나요?”

현행 노동관계 법령에서는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7개 법률, 6개 조문에서 근로자대표를 규정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권한을 가지는 노동관계법상 근로자대표는 이름 그대로 ‘노동자의 대표’여야 한다. 그러나 사업장에서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임되는 근로자대표의 비율은 크지 않다. 근로자대표 선출 과정에서 사측의 지배개입 정도가 적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 사례처럼 우리 회사 근로자대표가 누구인지, 어떻게 선출되는지, 재직은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노동관계법상의 근로자대표제가 지니는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제도적인 접근도 있다. 지난해 10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1년여에 걸친 논의 끝에 근로자대표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을 의결했다. 합의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반수 노조가 근로자대표 지위를 가지며,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노사협의회나 근로자 투표를 통해 선출된 자가 근로자대표가 된다. 또한 근로자대표의 임기는 3년이라는 것을 포함해 근로자대표 지위와 활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관계법상 근로자대표제도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꾸준하게 근로자대표(혹은 종업원대표)라는 이슈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현 정부에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세부적 과제 중 하나로 의제화해 경사노위에서 합의한 뒤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균씨는 연장근로에 대한 법정수당(가산임금)을 받지 못하는 침해를, 조영대씨는 연차휴가에 대한 노동자 본인의 시기지정권을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 노동자들의 의견을 대변할 근로자대표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법 개정을 통해 근로자대표제도가 바뀐다 하더라도 실제 노동 현장에서 온전히 정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주적인 근로자대표제도’가 사업장에서 정착할 때까지 우리 사업장의 근로자대표가 누구인지, 어떻게 선출되는지, 어떤 권한을 가지는지, 어떤 합의를 회사와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부단하게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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