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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이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리다가 뇌출혈이 발병한 것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상병 발병 직전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52시간이 넘지 않았더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됐다면 업무와 질병 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법은 이벤트 진행회사 직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고혈압 앓다가 뇌출혈에 좌반신 마비
1심 “고혈압과 비만이 뇌출혈 원인” 기각

A(37)씨는 2013년 3월 이벤트 진행회사에 입사해 운영업무를 담당해 왔다. 회사에서 기본급을 받는 직원은 A씨가 유일했다. 그런데 입사 3년 만인 2016년 4월 학교 수련회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야외무대를 설치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뇌교출혈·좌측 편마비·원발성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중증 좌반신 마비 및 보행장애, 언어장애가 생긴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이 요양불승인 처분을 하자 A씨는 2018년 6월 소송을 냈다.

A씨는 재판에서 업무상 과로를 호소했다. 이벤트 회사 특성상 주말에 행사가 많아 업무가 많았고, 야간행사 작업을 하는 등 1주당 70시간 이상 근무를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평소 총무관련 업무를 보면서 음향장비를 관리했고, 조명기사가 사직한 이후에는 해당 업무까지 감당해 업무부담이 가중됐다고 강조했다. 또 매일 400~1천500킬로그램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존의 고혈압이 악화해 뇌출혈을 일으켰다고 항변했다.

1심은 업무상 과로와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A씨가 평소 앓았던 고혈압이 발목을 잡았다. 재판부는 “고혈압은 자발성 뇌출혈의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이고, 혈압 조절은 뇌출혈을 경감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요소”라며 “A씨는 2013년 1월 이후 혈압약 복용을 중단했고, 기저질환인 고혈압과 중증도 비만이 뇌출혈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뇌출혈 발병 전 1주·4주·12주간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52시간이 넘지 않는 점도 산재 불인정의 근거가 됐다.

항소심, 1심 뒤집고 ‘업무상 재해’ 인정

그러나 항소심은 “A씨가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함으로써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상태에 있었다”며 1심을 뒤집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는 음향 및 조명장비들을 직접 설치·관리했고, 뇌출혈 발병 무렵에는 회사의 창고 이전 업무까지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A씨가 지급받는 기본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A씨는 행사 참여수당을 더 받기 위해 프리랜서들의 행사진행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적 여건에 놓여 있었다”며 “회사 대표도 ‘이벤트 시즌이라 업무량이 많은 것은 분명했다’고 증언해 A씨의 업무량이 과중했음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발병 전 12주 동안 근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복합적으로 노출된 업무에 종사해 뇌출혈 발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했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A씨의 업무가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육체적 강도와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A씨는 뇌출혈이 발생한 당일에도 출근해 평소대로 근무하고 있었던 점에 비춰 볼 때, 고혈압만으로 뇌출혈에 이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씨를 대리한 권규보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업무시간을 기계적으로 주목하는 공단의 관행을 타파하고 사회초년생인 A씨가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위에서 고용주의 과도한 업무지시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이 인정된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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