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규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

국회는 지난 2일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최초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는 지난 8일 이를 공포했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주택 기준을 종전 9억원 이하에서 12억원 이하로 높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번 개정은 문재인 정권에서 20여 차례 걸쳐 나온 부동산정책 실패 끝에 여당이 내놓은 안에 제1야당이 화답한 결과다. 소득세법에 비과세 주택 기준 관련 제도가 생긴 이후 45년간 대통령령에 위임했던 기준 설정 권한을 국회가 회수해 처음으로 법률에 기준을 규정한 대목에서 양도세 완화에 대한 두 정당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엿볼 수 있다.

개정법에 따르면, 예컨대 7억원에 주택을 매입해 2년간 거주한 A씨가 12억원에 그 주택을 매도해도 양도세를 한 푼도 내지 않게 된다. 법 개정 이전이라면 A씨에게 부과될 양도세가 3천만원이 넘었으니, 이번 소득세법 개정으로 웬만한 이의 연봉 정도 되는 세금을 아낄 수 있게 된 것이다.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갑작스러운 법 개정과 공포로 주택 매도인이 잔금일을 하루만 미뤄달라는 촌극이 벌어진다.

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2년 만에 소득이 3천만원 늘어난 A씨와 달리,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사람에게 이러한 횡재는 오지 않았다.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권의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 7.2%는 박근혜 정권의 그것(7.42%)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그보다 앞서 이 정권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출범 2년 차에 있었던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이미 실패를 예고했다. 상여금 등의 최저임금 비교 대상 임금항목 산입으로 최저임금 자체가 인상됐어도 총임금이 제자리걸음 하거나 삭감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농촌 이주노동자들은 컨테이너 숙소 사용료를 최저임금에서 제하고 나머지만 받을 수 있게 됐다.

매년 2천명 넘게 산재로 목숨을 잃어 왔으나 여전히 일터는 안전하지 못하다. 올해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우여곡절 끝에 제정됐다지만, 상시 고용인원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이 되지 않아 반쪽 법률에 그쳤다. 원안에 있던 인과관계 추정 규정도 삭제됐다. 상시 고용인원 50명 미만인 사업장은 법 시행이 3년 유예돼 법 시행일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는 벌써부터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권이 장시간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사용자는 여전히 합법적으로 1주 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특정한 업무’를 기준으로 기간제 기간 및 파견 기간을 정하지 않고 ‘특정 노동자’를 기준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그 결과 노동자를 갈아 끼우면 그만인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법화됐다. 혁신이라는 가명으로 노동보호 법제를 한 번에 비켜 가는 플랫폼 기업과 여기에 종속돼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 사이의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는 플랫폼 기술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노동정책은 부동산정책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크게 실패했다.

누구든 지속적이고 충분한 소득 없이는 살 수 없다. 노동을 통한 소득이 부족하면 다른 방법으로 소득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노동소득으로 부족한 어떤 직장인은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기대를 걸고, 누구 하나 부동산 대박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국민은 양도소득세를 완화하는 이번 소득세법 개정을 노동소득과 불로소득 중 무엇에 집중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일까? ‘영끌’로 집을 사라는 지난 정권이 줬던 신호는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다. 노동정책의 실패 속에서 주택 담보대출을 규제하는 식의 부동산정책은 ‘희망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의 가치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것과 불로소득을 경계하고 제어하는 것은 결코 별개의 정책일 수 없다. 노동을 통해 충분한 소득을 얻고 나아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실현하는 사회에서만, 주거공간인 부동산을 소득 창출의 수단으로 보지 않기로 하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