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요즈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한창 ‘뜨는’ 이슈다. 기업이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가를 지표화하고 기업에 대한 투자 결정에 활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이 재해 발생에 책임이 있어 ESG 평가가 나빠지면 자본시장에서 불리하게 되므로, 어떻게 해서든 ESG 평가등급을 높이려 든다. 일례로 쿠팡은 지난 6월 덕평물류센터 화재에 대한 안일한 대응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3개월 후 ESG팀을 구성했다.

그러나 쿠팡은 지난해 5월 부천물류센터에서 부실한 안전보건관리로 인해 150명 넘는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집단감염 피해를 입었는데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칠곡물류센터에서 고강도・심야노동 끝에 20대 청년노동자 고 장덕준씨가 과로사한 사건 이후에도 심야노동 문제나 휴식시간 관련 대책 역시 내놓지 않고 있다.

쿠팡과 같은 온라인 유통이 확대할수록 이를 뒷받침하는 유통물류 노동은 ‘필수 노동’이 된다. 이미 물류센터는 장시간·고강도·심야노동이 만연한 고위험 사업장이다. 쿠팡물류센터에는 상시 1만2천명 이상의 일용직·계약직 노동자들이 충분한 휴식시간도, 제대로 된 안전보건조치도 없이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 쿠팡이 설정한 시간당 작업량(UPH)을 소화하지 못하면 다음날부터 일감을 주지 않는 등 불이익으로 인해 살인적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장시간노동뿐 아니라 노동강도, 디지털을 활용한 노동감시・통제를 규제하지 않으면 노동재해의 위험은 피할 수 없다.

지난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회에서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개선하기 위해 AB701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10여 년간 물류센터 노동자 조직화에 노력해온 노조와 단체들의 요구를 반영한 이 법안은, 산업안전보건법령을 준수할 수 없게 만드는 작업 할당량(쿼터) 부여를 금지하는 등 노동강도를 규제하는 혁신적 내용을 담고 있다.

AB701 법안은 입법 목적을 밝히는 첫 부분에서부터 노동강도・임금・안전과 보건 사이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분 단위 심지어 초 단위로 계산되는 작업 할당량은 노동자들이 안전지침을 준수할 수 없도록 만들어 재해와 질병의 위험을 강화시킨다. 또 할당된 과업(태스크) 단위로 보수가 책정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고강도・장시간노동에 스스로를 몰아넣고도, 법정 최저임금의 혜택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된다.

AB701 법안은 또한 노동자에게 최근 90일간 자신에게 적용된 작업 할당량에 관한 서면 명세서와 자신의 작업 속도 데이터를 요청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 개개인의 작업 속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짜고, 이를 기반으로 작업 할당량을 강제하는 통제 방식에 관해 노동자의 알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배달·대리운전 등 플랫폼 노동자들도 알고리즘을 통해 일감을 배정받고 업무수행에 통제를 받는다. 인공지능(AI)이 노동자의 업무 수락률, 업무시간 등의 데이터를 평가하고, 이를 다시 노동자 통제에 활용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려는 노동관계법 적용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다.

지난 5월 스페인은 노동법 개정을 통해 플랫폼업체가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에 관한 정보를 노동자대표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프랑스도 플랫폼 노동자가 자신의 노무제공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노동법전에 추가했다. 덴마크에서는 가사노동자를 조직한 노동조합이 가사서비스 플랫폼업체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자가 플랫폼이 관리하는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갖도록 했다. 노동자와 노조가 노동강도를 비롯한 노동조건과 노동통제에 대해 개입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진짜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경영 모델이 아닐까.

노동권 연구활동가(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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