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이 강화되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산업재해뿐 아니라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의 책무가 증가했다. 관련 법령은 기업에 산재 및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상당한 패널티를 준다. 기업 스스로 산재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다 하라는 취지에서 제정된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은 관련 법령의 본래 취지와 달리, 법적 책임을 면탈하기 위한 사후 대처에 골몰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기업 가릴 것 없이 말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한 제철소에서는 원청과 하청을 가릴 것 없이 산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작은 사고부터 사망사고까지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원하청 모두 처벌받을 수 있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에 돈 많은 제철소 원청 경영진이 먼저 머리를 싸맸다. 그 결과 안전설비 증가, 안전작업 지침 개선 등 작업 안전 환경이 더 나아지고 원하청 산업재해 발생률은 현저히 감소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는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고, 진짜 결과는 따로 있다. 원청이 도급비를 추가해 하청에 ‘바지’ 안전이사를 앉히는 ‘안전이사 제도’가 뜬금없이 도입됐다. 하청 안전이사는 원청에서 안전관리자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인사들이다. 이들의 역할은 현장을 대충 둘러보고 핸드폰이나 하며 시간을 떼우다가, 원청 안전관리자가 안전 환경 실태를 점검하러 나오면 같이 커피나 마시며 원청의 지적 사항에 대해 바람막이 하다 집에 가는 일이다. 원청이 배치하고 하청이 고용한 ‘바지’ 안전이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은 실질적인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총괄책임자로서의 역할이나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이사의 역할을 수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원청 출신 ‘바지’ 안전이사가 하청의 안전 관리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면 하청 안전현장에서 감추고 있던 불편한 진실이 과도하게 드러나거나, 안전 관리는 뒷전으로 한 융통성 있는 작업 방식에 영향을 줘 하청기업의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등 불편한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청에서 자신의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던 몇몇 ‘바지’ 안전이사들이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경고를 받는 등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적도 있다. 애초부터 ‘바지’ 안전이사로 앉힌 인력인데, 과몰입해 제대로 된 안전이사 노릇을 한다는 것은 원청과 하청 입장에서 웃긴 상황이다. 그렇다고 비용이 투입된 ‘바지’ 안전이사들이 언제까지나 ‘바지’로만 있을소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듯, ‘바지’를 앉히는 본래 목적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이 ‘진정’ 안전이사로 거듭날 때는 현장에서 산재나 중대재해가 터졌을 때다. 산재나 중대재해가 터지면 원청과 하청 모두 관련 법령에 따라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원청과 하청은 ‘안전 관리 전문가’인 안전이사를 두고 ‘안전 관리에 만전’을 다했으니, 산재 및 중대재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경감받거나 그 책임을 면책받을 수 있는 카드로 안전이사를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바지’ 안전이사는 ‘진정’ 안전이사가 되고, 진정 자신의 소임과 역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원청과 하청은 비용을 들여 안전이사 제도를 도입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재차 강조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 발생에 대한 사후적인 책임을 지기보다, 산재나 중대재해를 예방하라고 만들어진 법령이다. 기업이 ‘바지’ 안전이사나 두고 법적인 책임을 면탈하도록 면죄부를 쥐여 주기 위해 도입된 법령이 아니다. 기업이 이러한 방식으로 관련 법령을 이해하고 대처한다면 현장 안전 환경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질 것이 없다. ‘바지’ 안전이사 제도를 도입한 결과 ‘내 가족도 일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한 작업환경이 개선했는지’ 원청과 하청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 짐작건대 대다수가 ‘내 가족이 왜 여기서 이렇게 험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대답할 것이다. ‘바지’ 안전이사 제도 도입 말고, 실효성 있는 현장 안전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고 기업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본과 실력이 있다. ‘눈 가리고 아웅’식의 안일한 대처로는 목숨을 담보로 제품을 만든다는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회사는 이를 명심해야 한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제대로 된 현장 안전 환경이 개선되고 더 이상 누군가 죽지 않을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