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환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습니다!” 2017년 5월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이다. 자칭 보수라고 칭하는 정당의 후보들조차도 임기 말(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정당을 가리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을 외쳤던 인상깊은 대선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후보가 당선됐지만 최저임금은 아직도 1만원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나오는 메시지는 5년 전과 다르다. “최저시급 철폐하겠다.” 최저임금제도를 없앤다고 한다. 이 발언을 한 후보의 정당은 5년 전 국민들에게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할 테니 제발 집권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불과 5년 전에 공약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정반대 얘기를 하는 것이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는 궁금하다.

최저임금 인상되면 고용이 감소한다? 경영계로 불리는 쪽에서 하는 말이다. 경제학원론 같은 경제학 기본서에서도 볼 수 있는 말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말은 사실일까. 그렇지 않다. 최저임금이 인상됐다고 고용이 감소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영향을 받기 전인 2017~2019년 3년간 취업자 수를 살펴보자. 2017년에는 2천672만명, 2018년에는 2천682만명, 2019년에는 2천712만명이다. 2018년 최저임금이 대폭 올랐지만 취업자 수는 줄지 않았다. 2018년 고용 증가율이 그전에 비해 낮아지기는 했다. 2015~2017년간 고용 증가 폭은 매년 20~30만명이었으나 2018년에는 9만7천명 수준이었다. 이것만 가지고 최저임금 인상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2019년 고용 증가 폭은 30만명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 영향이 2019년에도 누적돼야 할 것이나, 2019년 고용 증가 폭은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학술 연구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연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로 연결된다며 최저임금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최저임금을 지역별, 산업별로 차별화해야 한다. 이 또한 오랫동안 제기돼온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역별·산업별로 최저임금을 차별화하는 게 가능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2017년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한 ‘최저임금 제도개선에 관한 연구 TF’에서 엿볼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해 생활안정을 꾀하는 최저임금의 취지, 업종별 최저임금 차별 시 저임금 산업에 대한 낙인효과, 산업을 나누는 기준의 불명확성 등을 이유로 산업별 최저임금 차별화가 부적절하다고 봤다. 지역별 차등화 또한 전국이 일일생활권인 한국 특성상 지역 차등의 효과가 작고, 지역 구분에 따른 낙인효과 및 지역별 노동력 수급 왜곡 등을 이유로 부적절하다고 봤다. 이런 이유에서 2022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최저임금 차별화 주장은 기각했다.

최저임금을 폐지하자. 최저임금 인상 시 고용 감소나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이 먹히지 않자 본심을 드러내 최저임금 폐지를 주장한다. 정확하게는 ‘최저시급’을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 최저시급제도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명색이 법을 다루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인데, 노동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최저임금 철폐 주장은 헌법을 부정하는 발언이다. 최저임금에 관한 사항은 최저임금법에 규정되어 있고, 그 근거는 헌법 제32조 제1항에 있다. 해당 조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 근거를 둔 최저임금 제도에 대해 한국을 이끌어갈 대통령 후보는 아무렇지 않게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통해 적정임금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꾀하도록 하는 헌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아쉬운 발언이다.

최저임금을 포함한 노동 관련 공약들은 매 대선 때마다 큰 화두다. 누구는 표를 얻기 위해 과도한 포퓰리즘적 공약을 내기도 하고, 다른 이는 국민들 간의 갈등을 부추겨 득표하려는 목적에서 공약을 내기도 한다. 선거에 선거공학적 판단과 고민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후보들이 노동 관련 공약만 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신경 쓰지 못하는 점도 이해한다. 그러나 국민의 절반 이상이 형태를 불문하고 노동을 하는 현실도 자세히 보고 고민하면 좋겠다. 후보의 발언이나 공약은 후보가 고민하고 관심 있는 만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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