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법원이 건설현장에 천공기를 운반하다 숨진 화물운송 노동자의 산재는 원청건설사의 재해 통계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김국현 수석부장판사)는 건설업체인 A사가 안전보건공단을 상대로 낸 사고사망만인율 통보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이 사건은 변론기일이 한 차례만 진행된 뒤 바로 선고가 내려졌다. 사고사망만인율은 노동자 1만명당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말한다.

운송업체 화물트럭 운전자, 스크루 깔려 사망
공단, 원청 사고사망자 수 포함해 만인율 산정

A사는 2019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서울수서역세권 및 금천 행복주택 건설공사를 도급받았다. 이후 토목공사는 따로 B사에 하도급했고, B사는 개인사업자인 건설장비 임대업체에 천공기를 빌려줬다. 다시 건설장비 임대업체는 화물운송업체와 천공기 운반계약을 맺었고, 운송업체가 천공기를 공사현장에 운반했다.

공사가 시작되자 운송업체 소속 노동자 C씨는 지난해 10월9일 오전 6시께 화물트럭으로 천공기 부속품을 운반했다. 그런데 굴착기 운전원이 굴착기로 적재함 부속품을 밀어내고, C씨와 신호수가 고정쐐기기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원통형의 스크루(무게 약 700킬로그램)가 굴러 떨어졌다. C씨는 이를 미처 피하지 못해 스크루에 깔렸고, 당일 숨졌다.

그러자 공단은 C씨의 사망을 A사의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사망자수에 포함하고, 이에 따라 산정한 ‘2020년도 사고사망만인율’을 올해 6월 A사에 통보했다. 공단은 매년 건설업체 산재발생률을 산정해 해당 업체에 통보하고 있다. 산재발생률에 따라 건설업체는 시공능력 평가 때 공사실적이 감액된다. 회사는 사고사망만인율 통보가 잘못됐다며 공단을 상대로 지난 7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원청, 수급업체 사고사망에 모두 책임”

법원은 C씨의 사망을 A사의 사고사망자수에 포함한 공단의 처분이 적법하다며 A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천공기 부속품 운반계약에 따라 공사현장에 갔더라도 토목공사를 위한 필수 건설기계인 천공기를 운반하고 공사현장에서 근무하는 굴착기 운전원 등과 함께 부속품을 하역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며 “A사는 종합공사를 시공하는 업체로서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수급업체의 사고사망자에 관해 모두 책임을 진다”고 판시했다.

‘계약에 개인사업자가 개입돼 하도급관계가 단절됐다’는 A사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A사는 운송업체와 임시 근로자까지 책임범위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나, 시행규칙은 원칙적으로 해당 업체의 공사현장에서 사고사망재해를 입은 근로자수를 모두 포함한다”며 “(시행규칙은) 수급인과 직접 계약관계에 있지 않은 자의 사고를 제외하려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사가 ‘C씨의 사망사고는 공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항변한 부분 역시 배척됐다. 재판부는 “사고는 A사의 건설현장에서 흙막이 공사를 위한 천공기 및 부속품을 하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해 사고 내용이 A사의 공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며 “천공기 하역 작업 과정에서 A사가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볼 증명 또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공단은 시행규칙에 따라 종합건설업체의 2020년 사고사망만인율을 산정하고, 그중 A사에 대한 부분을 통보한 것”이라며 “사고사망만인율 산정에 공단이 재량을 갖는다고 볼 수 없어 재량권 일탈·남용이라는 A사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공단을 대리한 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사람)는 “산재를 예방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하는 책임이 원·하청 모두에게 있다는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며 “종합건설사는 해당 사고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에 사고사망만인율에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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