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대선은 노동이 ‘실종’됐다”고들 한다. 어제(11월29일자) <매일노동뉴스>에서 읽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서 <매일노동뉴스>가 개최한 대선 연속좌담회에 관한 기사는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29일로 대통령선거가 100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일부 대선후보를 제외하고는 노동공약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거대 양당 후보는 노동공약을 애써 비껴가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노동시장 유연화로 역주행한다.” 이렇게 노동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쓰고 있었다. 노동의 실종이라니. 가만히 읽어 보니 기사는 ’‘노동 있는 대선 어떻게 만들 것인가’ 좌담회 … “경제 하위범주 노동? 노동주권 되찾아야”‘라고 소제목을 달고 있었고, 이것을 읽고서야 나는 무엇에 관해서 좌담을 하는지 대충 파악이 됐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선출돼 각종 공약과 정책을 남발하면서 실질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노동에 관한 공약과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을 뒤집고 어떻게 노동이 실종되고 노동 있는 대선으로 만들 것인가를 논의했다는 것이겠다. 멋대로 기사의 제목과 첫 머리글로 좌담회를 재단하고서 나는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2.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에 실패한 것이 핵심이다. 만약 성공했다면 그 지점에서 대선의제가 만들어질 텐데, 그렇지 못했다. (중략)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다 보니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후퇴된 상태에서 대선을 시작했다.” 조돈문 교수(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좌담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노동공약을 이행하지 못했던 것이 이번 대선에서 노동이 실종된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조 교수는 “촛불(혁명 뒤라) 노동공약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며 문재인 정부가 그 공약을 이행하지 못했던 것을 들고 있었다. 그런가. 나는 생각해 봤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공약을 제대로 이행했더라면 이번 대선은 노동 있는 선거로 전개될 수 있었을까.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을 포함해서 여야 후보들이 다퉈서 노동에 관한 공약과 정책을 내세우며 국민들을 상대로 표를 달라고 하고 있었을까. 노동존중 사회의 실현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노동공약을 이행하지 아니한 데 대한 실망 때문에 국민들이 노동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나는 조 교수의 주장이 납득되지 않았다.
국민들이 알고 있는 대표적인 문재인 정부 노동공약을 꼽아보면, 최저임금 1만원에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로 노동시간 단축,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여기에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동기본권 행사 보장 등이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다가 2000년까지는 이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대통령으로서 직접 사과를 했고, 주 52시간 상한제를 하겠다며 근로기준법 개정을 했으며,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에 따라 공공기관에서는 추진하게 됐는데 자회사 방식으로 우회하는 길을 연 것이 문제였고, 비준을 공약한 ILO 4개의 기본협약 중 3개를 비준했다. 모두 하다 말았다고 볼 수 있겠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이행했더라면 오늘 여야 대선후보들이 다퉈 노동을 위한 공약과 정책을 내세우면서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 하고 있을 거라는 것인가. 최저임금은 1만5천원 이상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을 하고, 주 52시간 상한제를 주 40시간제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정책을 발표하며, 자회사 방식을 정규직 전환 방안에서 제외시키고 나아가 민간기업까지 포함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노라고 연설을 하고, 비준하지 아니한 ILO 협약들을 비준하겠노라고 토론을 한다는 것인가.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이 공약하고,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재명이 정책 발표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을까. 오늘 여야의 대선후보들은 문재인 정부 정책과의 차별성을 내세우기 바쁘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실현한 것조차 비난하고 부정하기에 바쁘다. 공약했던 대로 이행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그 공약과 정책의 이행 자체를, 나아가 그 공약과 정책 자체를 비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3. “전반적으로 산업전환에 대한 메가트렌드 이슈가 노동의제를 만들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산업전환이 되니 사업모델이 우선이다. 그래야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면서 산업전환의 종속변수로 노동이 이야기되고 있다. 기술과 산업이 변화하는데 노동은 적응해야 한다는 패러다임, 그런 로직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노동의제가 들어가기 굉장히 힘들다. 노동이 먼저냐, 사업 잘되는 게 먼저지 이런다.” 이문호 소장(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해서 대대적인 산업전환이 일어나는 시대라서 노동이 끼어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기마다 ‘트렌드’로 내세우는 것들이 있었다. 자본에 의해서, 그리고 권력에 의해서 시대적 전환이니 산업적 전환이니 하며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올 것처럼 요란했다. 인터넷·닷컴·디지털·플랫폼 등 기술 변화를 내세워 말하기도 했고 IMF 외환위기, 미국 금융위기 등 경제적 위기를 내세워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국가적 규모로 기업 구조조정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러한 기술적 변화와 경제적 위기는 언제나 노동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왔다. 노동자의 고용 등 노동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거기서 노동의 대응은 일정하지 않았다. 때로는 자본과 권력이 주도하는 전환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노동의 요구를 내세워 투쟁했다. 아무리 거창하게 패러다임의 전환이니 뭐니 해도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노동을 이용하는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거기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지위와 권리를 위해서는 노동운동은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록 사용자 자본과 이를 위하는 권력이 “사업 잘되는 게 먼저”라고 말해도, 그 사업은 노동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잘되는 사업이란 노동에 대한 비용을 절감하는 등으로 더 합리적으로 노동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노동의 눈으로 보자면, 산업전환이니 패러다임 전환이니 하는 것은 ‘노동이 먼저’가 아니라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사업 잘 되는 게 먼저’인 노동관계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4. “핵심은 더불어민주당이다. 국민의힘이 ‘반노동’이라면 더불어민주당은 ‘비노동’이다. 이것이 현재까지 대선에서 노동이 드러나지 못한 이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제시한 1호 공약인 ‘전환적 공정성장’은 ‘공정’을 전면에 부각하지만 여전히 ‘성장’을 우상향으로 끌어올리는 데 역점을 뒀다. (중략)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을 때려잡자 또는 노동은 숨어 있으라는 구도가 노동 없는 대선판으로 만들고 있다.” 좌담회에서 이병훈 교수(중앙대)가 이렇게 주장했다고 기사는 쓰고 있었다. 어차피 국민의힘은 반노동이니 대선판에서 노동이 실종되지 않으려면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노동을 전면에 내세워 공약과 정책을 밝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재명이 노동을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고 있는 탓이라고 말하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이재명 후보가 본격적으로 노동에 관한 공약과 정책을 발표하게 되면 더는 노동의 실종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 텐데, 과연 그럴까. 뭐 대선판에서 노동에 관한 공약과 정책을 두고서 후보들과 그 소속 정당들 사이에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게 되면 국민의 관심을 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나라 노동자들이 반길 만한 노동의 등장이 될까. 오늘 이 나라 경제에 밀려 실종됐다는 노동이 대선판에 등장한다고 해서 반겨야 할지 의문이다. 노동에 관한 공약과 정책을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늘도 대선 후보들은 전국 각지 산업현장을 돌며 말하고 있다.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하는 후보라고 표를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반노동’이라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조차도 ‘친노동’이라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5.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의 실종은 여야 대선후보들에게서 찾아서는 안 된다. 위에서 본 것처럼, 좌담회 참석자들은 그들에게서 찾고자 했지만 말이다. 오늘 대선판에서 노동의 실종이란, 노동운동을 빼고서 말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노동공약에 대해, 노동을 위한 산업과 기술의 전환에 대해, 그리고 노동을 위하는 경제에 대해 요구하면서 그 투쟁으로 대선판을 흔들고 있지 못하다. 노동의 후보, 노동의 정당이 아닌 그들에게서 실종의 이유를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노동을 실종하게 하는 것일 수 있다. 노동에게는 스스로를 잃고서 노동이 아닌 그들과 뒤섞이는 것은 노동의 실종이고, 그들의 말이 노동의 것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노동운동의 종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