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UC버클리의 데이비드 카드 교수는 2006년 한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고 했다. 경제학의 허상을 파괴하는 발언이었다. 90년대 초 카드의 연구 이전엔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기업의 노동 수요가 줄어 고용이 줄고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게 경제학의 고전이었다.
1894년 뉴질랜드가 첫 도입한 최저임금은 1896년 호주, 1909년 영국으로 퍼졌다. 미국은 1912년 메사추세스주가 처음 도입했고, 1938년 공정근로기준법에 따라 전국에 실시했다. 우리는 1986년 법을 만들고 1988년부터 시행했다.
미국은 최저임금이 2개다. 연방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주정부가 그 위에 별도의 최저임금을 정한다. 대부분의 주는 연방 최저임금보다 높게 정하지만, 아직도 연방과 같은 임금을 정한 곳도 있다.
카드 교수는 1988년 캘리포니아주가 최저임금을 시간당 3.35달러에서 4.25달러로 올렸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1992년에 나온 이 연구의 결론은 연방 최저임금보다 높게 정한 주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거다.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감소를 부른다는 경제학의 고전을 부정한 대표 연구는 카드 교수와 앨런 크루거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1994년에 발표한 논문이다. 이번 노벨상은 이 논문에 주목했다. 논문은 미국 뉴욕주 아래 나란히 붙은 뉴저지주와 펜실베니아주 접경지역에서 실증연구로 이뤄졌다.
논문에 따르면 1992년 4월1일 동쪽 뉴저지주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시간당 5.05달러의 최저임금을 실시했다. 바로 서쪽에 붙은 펜실베니아주는 연방 최저임금 4.25달러를 그대로 유지했다. 두 주 접경지역에 있는 햄버거 가게를 조사해 고용변화를 분석한 결과 예상과 달리 뉴저지주 가게의 고용이 펜실베니아주보다 오히려 늘었다.
이 논문은 이후 최저임금 논란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데이비드 뉴마크 교수는 2000년 같은 두 주의 행정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였다고 반박 논문을 내놨다. 곧바로 카드와 크루거 교수는 기존 자료와 행정데이터 등을 분석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재반박했다. 이후에도 미국에선 여러 학자가 활발하게 최저임금 연구를 이어 갔지만, 학자들 간 일치된 결론은 아직까지 없다.
노벨위원회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최저임금과 이주노동자, 교육과 고용 등 주로 약자의 노동을 분석해 늘 새로운 시각을 던졌던 카드 교수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했다. 결코 존재하지 않는 완전경쟁시장을 상정해 놓고 헛소리나 지껄이는 학자들을 한 방 먹인 셈이다.
경향신문은 이 소식을 지난달 12일 ‘노동시장 통찰 택한 노벨경제학상 … 사회문제 새 시각 제시’라는 제목을 달아 2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한겨레도 같은 날 2면에 ‘최저임금 인상해도 고용 안 줄어, 실증 분석한 카드에 노벨경제학상’이고 보도했다.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을 맹비난했던 매일경제도 같은 날 1면과 2면에 이를 보도하면서 “최근 노벨위원회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 실용파 학자에게 잇달아 수상의 영예를 안기고 있다”며 카드 교수의 실증연구에 힘을 실었다.
나는 노벨상 발표를 듣고 조선일보 보도가 궁금했다. 다른 신문이 1면과 2면 등 주요 면에 소식을 전한 반면 조선일보는 저 멀리 33면으로 기사를 처박았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감소로 이어진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중론이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실증연구로 밝혀낸 것이 카드 교수의 업적”이라며 내용도 왜곡했다. 최저임금을 제대로 전공한 학자라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로 이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카드의 연구를 특수한 예외라고 쉽게 치환해 버리는 조선일보의 재주가 놀랍다.
카드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진영 논리에 악용 당하는 걸 싫어했다. 카드 교수는 “내 연구가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집단이나 반대하는 집단 모두에게 잘못 이용되고 있다. 나는 정치적 논란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자는 ‘연구’로 말할 뿐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