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시내버스 운전기사 민수씨는 입사 후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한 적이 없다. 교통사고를 낸 적도, 징계를 받은 적도 없는 그야말로 모범사원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에는 “설 연휴에는 쉬고 싶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오랜 운전 근무로 얻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휴식이 필요하고 명절에는 가족과 보내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회사는 설 연휴 이틀을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민수씨를 해고했다.

회사 취업규칙과 노사 단체협약에는 ‘설날과 그 전날, 그 다음날은 유급휴일을 준다’고 명시돼 있다. 민수씨는 단협으로 보장된 유급휴일(쉬기로 한 날)에 쉬었을 뿐인데 해고를 당했다. 과연 이 해고는 정당한가.

법원은 회사의 취업규칙에 ‘업무상 필요에 의해 휴일근로를 명할 수 있으며 종업원은 공익운수사업의 특수성에 의해 긴급성을 요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주목했다. 그에 따라 회사는 업무상 필요로 휴일근무를 명할 수 있고, 회사가 정한 휴일근무자 지정방식이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비록 민수씨가 설 연휴 배차일 5일 전에 미리 회사에 고지했더라도 회사의 승낙을 얻지 못한 이상 무단결근이 된다는 것이었다. 불가피한 병원진료 일정이 있던 것도 아니므로 허리디스크로 아프다거나 가족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회사의 휴일근무 명령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단협으로 보장된 유급휴일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취업규칙에 의해 그림의 떡이 됐고, 수술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휴일근무를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아파서 휴식이 필요하다거나 명절에는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마음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민수씨는 항소했다. 근로기준법은 강제근로를 금지하고 있고(7조), 연장근로는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어야 허용된다(53조). 대법원은 당사자 간의 연장근로 합의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개별적 합의를 의미하고, 단협에 의한 연장근로 합의의 경우 개별 근로자의 연장근로에 관한 합의권을 박탈하거나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봤다. 회사는 근로계약과 단체협약으로 설 연휴를 유급휴일로 정했다. 소정근로시간을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정했으므로 민수씨가 소정근로시간을 근무한 이상 개별적 동의 없이 이를 초과한 연장(휴일)근무를 강제할 수 없다고 우리는 주장했다.

나아가 단협은 ‘종업원이 정당한 사유로 휴일근무에 응하지 않았을 때에는 불이익 처리를 할 수 없다. 단, 막차운행 기피 등 고의로 회사에 지장을 초래했을 때에는 징계 조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가 ‘막차운행 기피 등 고의로 회사에 지장을 초래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징계할 수 있고 그 외의 사유로 휴일근무를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불이익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역시 단협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다고 봤으므로, 위 단협 규정을 회사의 주장처럼 ‘노동자는 사용자의 휴일근무 지시에 반드시 응해야 하고 오직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근로의무에서 면제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만일 1심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회사는 업무상 필요가 있는 이상 무제한으로 휴일근무를 강제할 수 있고, 노동자는 병원진료 일정 등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휴일근무를 강제하는 셈이다.

법원은 모든 운전기사가 민수씨처럼 휴일근무를 거부하면 소는 누가 키울지 걱정했는지 모른다. 법원의 걱정 덕분에 회사는 명절 휴일근무에 대비한 대체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없었고, 휴무 중인 노동자들에게 휴일근무를 강제하면 그만이었다.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 노동자들은 허리디스크에 걸리고 가족과도 멀어졌지만 그런 이유로 쉬었다간 해고될 수밖에 없다.

법치사회에서 법원은 오직 법과 상식에 근거할 때 정의롭다. 부디 소 키울 걱정은 농부에게 맡기시라. 정당한 휴식권을 주장하는 노동자들과, 아플 땐 쉬고 싶고 명절엔 가족과 함께 있고픈 소박한 상식에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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