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금속을 만드는 주얼리에스엘(JSL) 노동자 13명이 지난 9월 “밥값을 달라”며 파업과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41일차 되던 날 회사는 “적자가 지속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폐업을 예고했다. 이후 JSL 노동자의 천막농성은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가 끝을 알 수 없는 투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2일 <매일노동뉴스>가 경기도 안양 농성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활 가뜩이나 어려운데…”
또 휴직 얘기 꺼낸 회사
JSL은 귀금속을 제조해 주얼리업체에 납품하는 회사다. 노동자 34명을 고용하고 있다. 1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대부분인 일반 귀금속 제조업체보다 규모가 큰 편이지만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직원 중 3분의 1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세금을 떼면 손에 쥔 돈은 대부분 월 200만원을 밑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투쟁에 나선 것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무급·유급휴직, 임금삭감 요구가 계속되면서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해 3월 JSL 직원 절반 가까이가 회사 요구로 무일푼의 무급휴직 동의서를 작성했다. 이후 회사는 고용노동부에 유급휴직 지원금을 지원받았고, 4월부터 12월까지 노동자들은 순환휴직을 했다. 휴직자 숫자는 매출에 따라 들쑥날쑥해 적을 때는 6명, 많을 때는 19명까지 됐다.
“코로나19니까 다 어렵구나 해서 처음에는 무급휴직·임금삭감에 동참했어요. 그런데 지난해 11월 사장이 갑자기 올해 2월까지 임금 30%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하는 거예요. 이미 다들 무급휴직, 임금삭감 등이 이어져 200~300%씩 임금을 덜 받은 상태라서 생활이 가뜩이나 어려운데….”
김미소(41·가명)씨가 “이전에는 공임(매출)이 오르면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이라도 했는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동료들을 모았고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주얼리분회에 가입했다.
“휴직 9개월째 이어졌는데, 또”
분회가 생긴 뒤 회사와 교섭이 시작됐다. 노조의 기본급과 식대를 각각 10만원씩 인상·지급하라고 요구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전 직원에게 별도 지급되던 식대는, 임금에 산입되거나 없는 상태였다. 노사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올해 6월 조정중지를 결정했다. 이후 노사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회사의 지급여력을 두고 노사 의견이 팽팽히 갈린다. JSL 대표는 “하루 400~500벌을 생산해야 공임 1억2천~1억5천만원을 올린다”며 “그렇게 해도 직원들 월급 주고, 고정지출이 나가면 빠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하루 100개 정도 생산하고, 저번 달에도 8천만원 적자를 봤다”고 설명했다.
분회는 “지난해 3월 무급휴직 작성한 무급휴직 동의서를 보면 주문량 250벌(개)의 80% 회복시 정상근무를 하겠다고 했다”며 “처음에 회사가 이 정도면 이익이 난다고 했던 기준을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급휴직기간 동안 휴직자가 정상 출근하고, 재택근무를 수행한 점도 그 근거다. 김정봉 분회장은 “(무급휴직 대상인 일부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하고 계좌로 70%의 임금을 받으면, 나머지 30%는 현금으로 수령했다”며 “실질적으로 일을 6시간까지 시켰고, 야근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미소씨는 “휴직동의서를 쓴 사람 중 일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노동자 A씨는 지난해 4~5월 회사의 지시로 원치 않는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이후에도 회사에 출근해 일했지만 월급여 70~90%를 기준으로 4대 보험을 공제한 급여명세표를 받고, 추가 임금을 현금으로 수령한 뒤 ‘임금 수령 확인서’를 받았다.
JSL 대표는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한 뒤 매출이 급감했다”며 “지난해 코로나19로 12억5천만원 적자를 보고, 올해 9월 기준 3억1천만원 정도 마이너스가 났다”고 강조했다. 지급여력이 없다는 항변이다.
하지만 노조가 주장한 유급휴직 지원금 부정수급에 대해서 회사는 “각 파트에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았는데, 이 사람이 있어야지만 일이 돌아가는데 휴직을 하고 있는 경우 업무상 조율이 안되니 나와서 일을 하라고 하고 돈을 줬다”고 인정했다.
JSL 본사 관할인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고용유지지원금 휴직지원금 장기 수령 사업장 중 하나로 JSL을 선정해 부정수급 여부를 조사 중이다. 대구지방노동청 부정수급과 관계자는 “휴직지원금은 한 달 출근을 안 하는 조건으로 지급하는 건데 하루라도 나왔다면 부정수급이 맞다”며 “필수인력이라 어쩔 수 없었다면, 애초 휴직 대상자에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노동부 “주얼리 노동자 75% 고용보험 미가입”
JSL 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최근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우리 사회 한 단면이다. JSL은 주얼리분회가 생긴 뒤 상황이 하나둘 개선됐지만 불과 1~2년 전만 해도 연차휴가를 보장받지 못했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했다.
2018년 입사한 김미소씨는 “2019년에 연차 3개가 처음 생겼다”며 “2020년에는 6개, 올해는 근속연수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가 15개의 연차를 보장받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에는 노동자가 모두 4대 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입사 당시만 해도 A급(4대 보험 미가입, 현금 지급), B급(4대 보험 가입), A+B급(반 4대 보험+반 현금 지급) 등으로 나눠 4대 보험을 가입했다”고 덧붙였다.
2018년 노동부는 서울 종로구·중구 귀금속 사업장 종사자 7천635명을 조사했는데 10명 중 7명(75.2%)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노동계가 이미 수차례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주얼리 노동자의 위험한 작업환경 개선은 갈 길이 멀다. 노동부 안양지청은 올해 9월 산업안전근로감독 결과 JSL에 정기안전보건교육·특별안전보건교육·특수건강진단 미실시 등을 이유로 8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시정을 지시했다. 회사는 질산·메탄올 등 위험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에게 보호장구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미소씨는 “가장 큰 문제는 약품이 위험하다는 사실보다,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일해 왔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를 포함한 13명의 노동자는 매일 공장 앞 천막농성장으로 출근한다. 그는 “노조가 없었으면 임금 삭감을 당하고도 억울함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며 “그나마 이런 억울함, 문제의식이 생기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폐업을 선언한 상태에서 ‘폐업을 해도 괜찮다’는 각오로 싸우려 한다”고 다짐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