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늦가을에 필자가 작성한 ‘예술인들에게 노동부의 문을 열어라’는 제목의 글이 <매일노동뉴스>에 게재된 바 있다. 대략 2년이 지난 지금 예술인들, 특히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던 고용노동부 문은 열렸다. 하지만 노동자성 여부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2년 동안 노동부에서 처리된 수많은 사건을 일도양단해 평가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몸을 담고 있는 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처리된 노동사건 결과만 놓고 보면, 스태프의 노동자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정되는 추세다. 그러나 뮤지컬 배우들의 경우 제작사의 적극적인 인정(자백과 같은)이 있으면 노동자성이 인정됐다가 최근에는 일괄적으로 부인되는 경향이다.
뮤지컬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동자성 판단에서 왜 이렇게 다른 결론이 내려질까. 노동부는 겉으로는 법원 기준을 인용해 판단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지휘관계가 명확한 월급쟁이 직장인들이 하는 경제활동이 노동이라는 근대적 노동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직접적 지휘·감독성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성으로 그 판단 징표를 전환했음에도 뮤지컬 앙상블 배우의 노동자성을 부인한 노동부 일선 지청은 이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뮤지컬의 화려함만을 보면서, 그 이면에서 작품이 어떤 공동작업을 통해 생산되는지 그 실상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오도 있다. 실제 서울지역의 한 노동지청은 앙상블 배우들의 체불임금 진정사건을 종결하면서 노동자성 부인 이유에 대해 “○○○은 뮤지컬 □□□□의 출연배우로서 개인의 예술성, 대중적 인기도에 의해 책정된 출연료를 지급받는 점, 공연활동은 예술적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활동이라는 점에서 순수한 의미의 노동이라 할 수 없으므로 신청인은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의 뮤지컬 앙상블 배우는 회당 출연료가 12만원이었고 한 달 동안 공연해 받는 금액은 300만원 정도였다. 120회차 이상 진행하는 뮤지컬을 1년에 1개 참여하더라도 공연을 통해 버는 수입은 2천만원 내외다. 2~3개월에 달하는 연습 기간은 페이를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에 공연수입으로만 생계를 꾸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순수한 의미의 노동이 아니라고 한 것일까. 노동지청은 노동자성 부정의 판단근거로서 개인의 예술성, 대중적 인기에 의해 출연료가 책정된다는 점을 들었다. 낮은 출연료를 받는 앙상블 배우들은 출연료를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인기를 얻어 대중적으로 알려진 후에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 주연배우로 성장하기 위해 공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물론 필자의 상상일 뿐이다. 과연 순수한 의미의 노동이란 무엇일까. 진정 사건 종결 이후 해당 사건은 도산 등 불인정 취소 청구사건으로 전환됐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법률지원으로 현재 서울행정법원에서 첫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한편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는 개별 노동법에 의한 보호 필요성 역시 고려돼야 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출연료가 체불되기도 하지만, 여러 개의 제작사를 차려 놓고 배우들의 임금을 고의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또 다른 법인으로 공연을 올리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최근 위드코로나에 발맞춰 공연 제작이 증가하면서 일부 상습체불 제작사의 행태가 다시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법인을 세탁한 상습체불 제작사에게 임금체불의 형사책임을 묻지 않으니 출연료를 떼인 배우들이 소송을 통해 판결문을 받더라고 페이퍼 법인의 깡통계좌에 강제집행이 될 리 없다.
물론 필자는 뮤지컬 전문가가 아니다. 몇 줄로 뮤지컬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종사자들의 어려움을 언급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뮤지컬의 화려함에 가려진 이들이 배우라는 이유로 노동자성 판단에서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면 헌법상 보장된 법률 앞에서의 평등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뮤지컬 배우, 특히 앙상블 배우들은 제작사 대표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지는 않으나 연출감독 또는 안무감독의 지시를 직접 받는다. 이런 지시를 사용자에 의한 직접적 지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휘·감독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출퇴근 시간의 경우 연습일정표를 준수해야 한다. 더블캐스팅이 되는 주연배우들 이외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것은 계약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무대감독이 작성하는 공연일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작업지시서로 이해할 수 있고 출연료는 대중의 인기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작품 공연 기간과 출연경력에 따라 정해진다. 아울러 취업규칙 적용 여부의 경우 관행화된 현장 매뉴얼이 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근로조건 준수 규범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제작사인 사용자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신고인 ○○○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므로 노동부의 처분은 위법부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