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선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연대라는 말 대신 새삼 박애라는 말을 꺼내 본다.

자유·평등·박애라는 말로 프랑스 혁명정신을 배워 온 세대가 아니라면, ‘박애’란 낯선 말이다. 한 번도 일상언어로 박애를 말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연대라는 말보다 박애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더 와닿는다.

필자는 사용자 대리를 하지 않고, 성범죄 가해자 대리도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필자로서는, 잘 사는 사람들 더 잘 살게 해 주기 위해 돈 몇 푼에 나를 갈아 넣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모든 구체적인 경우에서 노동자와 성범죄 피해자가 늘 최선의 옳은 행동만 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100% 선한 피해자란 현실에서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하며 용서받고 용서한다. 프랑스 혁명정신이 자유·평등·박애를 말하면서 그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 또 관용을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되, 다른 한 편으로 상대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뜻은 개인 대 개인의 다툼이 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방구석 여포를 만드는 정도밖에 될 수 없다. 개개인의 뜻이 흐름이 되고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많은 사람들의 뜻이 돼야 하고 결국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달 1일부터 소위 위드코로나가 시작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대선구도로 들어가면 선거판에서 수많은 정치적 이슈들이 논의될 것이 당연하다.

필자는 여성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이면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하고, 변호사이면서 조금쯤은 활동가이기를 꿈꾼다. 중간관리자인 근로자이고 또한 서비스 생산자이자 소비자다. 모순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적어도 아주 많이 다른 집단들에 속해 있으면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노동자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도 생긴다. 노동조합 내에서 여성노동자의 이슈가 노동이슈가 아닌 이슈, 또는 중요하지 않은 이슈로 취급되는 경우가 있다. 노동이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여성, 여성이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노동자는 흔히 있을 수 있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약자가 스스로를 약자라고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기 권리만 주장하고 자신만 피해자라고 주장한다면, 남는 것은 피로감과 고립뿐이다.

당연히 반대도 걱정이 된다. 선거이슈에 묻혀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알려지지조차 않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중요한 이야기들이 논의조차 되지 않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이 희생과 인내를 강요당할 것인지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유일한 해결책은, 촌스럽고 진부하지만 박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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