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생 이준석이 지난 6월11일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자 조선일보는 다음날 아침 신문 1면 머리에 ‘2030, 판을 뒤집다’는 제목으로 반겼다. 동아일보도 ‘30대, 낡은 정치 뒤엎다’고 평가했다.
이준석 대표와 같은 85년생 산나 마린은 이미 2년 전에 핀란드 총리가 됐다. 벌써 세 번째 여성 총리였으니, 핀란드에선 놀랄 일도 아니었다. 놀랄 일은 마린의 첫 내각 지명 때부터다. 19명의 장관 가운데 12명을 여성으로 뽑았다. ‘총리가 제 입맛대로 장관 지명하는 게 뭐 대수냐’라고 되묻겠지만, 연합한 5개 정당을 설득한 정치력은 평가받아야 한다. 더구나 마린은 자신이 속한 사민당의 대표도 아니었다. 그러나 의원 200명 가운데 93명이 여성인 핀란드 정치에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런 정치판을 만든 국민이 더 놀랍다.
스웨덴 의회도 여성 의원이 47%나 된다. 지난달 25일 치러진 아이슬란드 총선에서 전체 63석 가운데 33석에서 여성 의원 당선이 예상돼 유럽에서 처음으로 여성의원이 과반을 넘긴 나라가 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재검표 결과 여성 후보 30명만 당선됐다. 그래도 아이슬란드는 47%가 넘는 여성 의원을 보유한 나라다.
1990년에 와서야 모든 지역에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을 만큼 ‘꼴보수’의 나라 스위스도 지난달 26일 국민투표에서 64.1%가 찬성해 세계 30번째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에 올랐다.
지난해 말 스위스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반대 시민 5만명이 서명해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를 앞두고 찬반 논쟁이 뜨거웠지만 투표 결과 26개 모든 주에서 찬성이 과반을 넘었다. 전 국민 셋 중 두 명이 찬성하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치권을 압박해 가며 한 걸음씩 전진한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5월 기차로 2시간30분 안에 있는 거리의 국내선 항공운항을 금지하고, 에너지효율 등급이 낮은 주택의 임대사업을 금지했다. 전자제품에 탄소배출량 표기를 의무화하는 기후 복원 법안을 가결했다.
독일 베를린 시민은 서민 숨통을 죄어 온 주택 임대료 폭등에 항의해 지난달 26일 총선 때 주택 공공화 찬반 주민투표를 벌였다. 투표 결과 베를린의 주택을 공공소유로 전환해야 한다는 안에 시민 56.4%가 찬성했다. 베를린 시민은 2019년부터 베를린에서만 11만채의 아파트를 소유한 도이체보넨 등 부동산 임대회사들이 베를린 집값 폭등의 주범이라며 강제수용 운동을 벌여 온 끝에 이번 국민투표로 결실을 맺었다. 물론 강제할 권한을 놓고 시비가 예상되지만, 베를린시는 납득할 만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11월 대선을 앞둔 칠레에선 지난 4일 여론조사 결과 35살의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2위와 7%포인트 차이가 났다. 보리치는 이준석 대표보다 한 살 어리다. 보리치는 10년 전 칠레대 총학생회장으로 교육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전국적 시위를 주도하면서 칠레 사회의 근본개혁을 주창했다. 지금 하원의원인 그는 여전히 줄무늬 티셔츠와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채 대중 앞에 선다. ‘독재자의 나라’ ‘신자유주의의 고향’같은 부정적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칠레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나이 여든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연설에서 ‘부자 증세’를 주장했다. 바이든은 “통계가 분명히 말한다. 지난 40년간 부자는 더 부자가 됐고, 너무 많은 기업이 노동자와 지역사회, 국가에 책임감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함을 안다. 바이든은 3조5천억달러(약 4천조원)에 달하는 사회안전망 강화 예산을 추진 중이다. 부자 증세 없이, 대기업 증세 없이, 사회안전망을 말로만 주워섬기는 우리 대통령과는 다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