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대 변호사(민주노총 울산법률원)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달 16일 오전, 대구에서 재판을 마치고 울산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적 인물”(당사자나 주변에서 붙여 준 게 아니다. 공익의 대변자라는 울산지검의 공식 입장이다.)인 최병승의 대법원 형사사건이 파기환송됐다는 것이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운전을 하다 말고 가까운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는 곧바로 최병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재판운이 있네요. 대법원 파기환송이랍니다. 축하드립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축하도 받았다.

반전은 오후에 일어났다. 판결문이 도착한 것이다. 3분의 2만 이기고 3분의 1은 졌다.

최병승은 2003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를 만든 조합원이었고,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 투쟁을 하다 해고됐다. 해고 5년 만인 2010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아 그 유명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판결을 만든 당사자다. 최병승 판결 이후 2010년 12월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울산1공장 CTS라인을 점거하고 25일 동안 점거파업을 했다. 수많은 조합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고, 울산사무소의 필자와 정기호 변호사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형사재판을 진행했다. 2012년 송전탑 점거투쟁을 비롯해 파업투쟁이 이어졌다. 이 투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최병승은 2010년 25일간 파업 당시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이었다. 점거현장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울산에 상주하면서 공장 밖에서 파업을 지원했다. 그러자 검찰은 “최병승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므로 공장 안에서 25일 점거파업을 한 조합원들과 공동정범이니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업무방해죄로 기소했다. 기가 막혔다. 피고인만 52명이 기소된 형사재판에서 치열하게 다퉜다. 1심에서 이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자 검찰은 고등법원에 항소하면서 “공동정범이 아니라면 업무방해죄의 방조범이다”며 공소사실을 변경했다. 파업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근거는 ① 점거파업 기간 동안 공장 밖에서 일곱 번의 집회에 참가해 점거파업을 지원한 사실 ② 점거기간 중 단 한 번 점거현장에 들어가 조합원들을 만나 발언한 사실 ③ 점거농성 전후로 금속노조의 공문을 비정규지회에 전달했다는 사실 세 가지였다. 더 어이가 없었다. 역시 치열하게 다퉜지만 최병승은 고등법원에서 업무방해죄의 방조범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다. 2015년 9월 일이다.

6년을 끌던 대법원이 지난달 16일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최병승을 업무방해죄의 방조범으로 본 고등법원 판결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3분의 2만 틀렸다는 것이다. 밖에서 지원집회를 한 것, 공문을 전달한 것은 무죄지만 단 한 번 점거현장에 들어가 조합원들을 만나 발언한 것은 유죄라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의 한 대목을 그대로 가져오면 이렇다.

“그 당시 피고인 최병승의 노동조합 내 지위와 영향력이나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발언 내용 등에 비춰 볼 때 정범의 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범행을 실행하고 있던 정범으로 하여금 그 범행을 더욱 유지·강화시킨 행위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최병승의 노동조합 내 지위와 영향력이 등장한다. 그렇다. 대법원은 최병승을 어마어마한 인물이라고 선언한 거다. 그 어마어마한 최병승이 조합원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말했으니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고, 그의 말 한마디에 점거농성이 좌우됐다는 거다. 도대체 노동조합과 조합원, 목숨을 건 25일간의 점거파업 투쟁을 뭘로 보는 건지 황당할 따름이다. 당시 점거현장을 오가며 격려발언을 하고 지원 물품을 전달한 수많은 사람들, 당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지부장 및 간부들, 금속노조 위원장, 야당 국회의원들, 민주노총 간부들은 그 누구도 업무방해의 방조범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최병승이 참 대단하지 않은가?

이제 이 사건은 다시 부산고등법원으로 내려왔다. 곧 다시 공판기일이 열릴 것이다. 내 변호사 생활이 올해로 16년째인데, 2012년부터 10년째 이 사건을 맡고 있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더 치열하게 다툴 것이기 때문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최병승 동지의 재판운에 기대어 볼 요량이지만, 대법원 파기환송 사건이라 다른 결론이 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함정이다. 최병승의 재판운이 얼마나 영험할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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