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성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 박준성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지난여름 휴가로 강릉에 다녀오신 분들은 넓고 푸른 동해바다에 감탄하기에 앞서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A노무사는 물러가라!”고 쓰인 다 헤져 버린 현수막들이 들뜬 관광객 사이에서 삐죽 선 모습을.

A노무사는 강릉의 중견제조기업에 ‘경영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노무관리를 총괄하고 있는데, 이 기업이 최근 1년간 벌인 일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지난해 6월 임금을 사용자에게 백지위임하던 기존 어용노조를 벗어나고자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산하 지회로 조직을 전환하자, 이 기업은 조직형태변경의 효력이 없다고 ‘선언’해 버리고는 금속노조를 교섭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태풍에 공장 외벽이 날아가는 황당한 사고에 노조가 근로감독을 청원하자 뜬금없이 노조 탓을 하며 회사를 폐업하겠다고 협박하는가 하면, 노조가 쟁의행위에 돌입하자마자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근로자들에게 1일 5만원의 격려금을 지급하며 노동자들을 유혹했다. 이 기업의 노동자들 임금수준이 최저임금을 조금 상회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파업 기간 위법한 대체인력을 투입한 것은 덤이다. 심지어 조직형태변경 이후 수백 회에 걸쳐 노조원들의 비위행위를 찾기 위해 CCTV를 돌려 본 것이 확인됐고, 실제로 CCTV에 촬영된 내용을 기반으로 노조간부들에게 경위서까지 징구했다. 아무리 레트로가 열풍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결국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기업이 벌인 행위들을 전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 그러는 동안 노조는 성실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공장이 아니라 강릉시내를 헤매며 겨울을 나야만 했고, 끝내 단체교섭은 이뤄지지 않은 채 노동위원회의 중재결정으로 쟁의행위가 마무리됐다. 8개월이 넘는 파업기간 동안 탈퇴 조합원은 늘어만 갔고, 남은 조합원들의 생계는 메말라 갔다. 강릉시내에 걸린 현수막이 그토록 다 헤져 버린 이유다.

결국 보다 못한 노조가 고용노동부를 통해 직접 이 기업의 노무관리를 총괄하는 A노무사 징계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노조는 7개의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됐고, 이전 징계이력까지 감안할 때 빠르게 노조파괴 노무사에 대한 처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노동부 장관마저도 인사청문회 당시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의법조치하겠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부가 수사를 시작한 지 벌써 10개월이 넘도록 여전히 그에 대한 처분은 감감무소식이다. A노무사의 행위가 ‘경영고문’으로 한 행위이지, ‘공인노무사’로서 한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나. 이쯤 되면 출근하면서 ‘오늘은 경영고문’이라는 이름표라도 붙이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창조컨설팅의 적나라한 노조파괴 컨설팅이 온 세상에 드러난 이후 노동부는 최근 개정된 공인노무사법을 ‘창조컨설팅 방지법’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개정안을 발의한 이용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조파괴 노무사들이 다시는 노무사로서 일할 수 없도록 노조파괴 등의 행위를 한 노무사들을 영구퇴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공인노무사법 2조1항3호는 “노동관계법령과 노무관리에 관한 상담·지도”를 공인노무사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고, 동법 13조3호는 “법령에 위반되는 행위에 관한 지도·상담,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할 당시 그가 공인노무사법상 개업노무사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면 법령에 위반되는 행위에 관한 지도·상담을 제공하는 경우 공인노무사법상 징계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새로 열린 단체교섭에도 멀쩡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다. 오늘도 여전히 그는 공인노무사다.

A노무사에게는 아무런 기대도, 악의도 없다. 그래서 직업윤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A노무사 또한 그가 늘 노동자들에게 엄포를 놓던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분돼야 한다는 것뿐이다. 만일 개정법이 공인노무사가 ‘경영자’로서 한 행위라는 이유로 이를 규율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노조파괴 헬게이트’가 열릴 것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개최될 공인노무사징계위원회가 개정 공인노무사법의 존재 의의를 밝힐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노조파괴의 우회로를 열어 줄 것인지 많은 노동자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공인노무사징계위원회를 바라보는 이 시선이 부디 기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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